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들에게 밝힌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가치 또한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신년사는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주목을 집중시킨다. 올해도 신년사 발표 생방송은 408만명이 동시에 지켜보며 16.2%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모두 1,841개의 낱말로 구성된 올 신년사에는 문 대통령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주요 어휘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예를 들어 이 발표의 청중을 지칭하는 '국민'은 모두 33차례 등장한다. 또 '경제'와 '코로나'가 각각 29번, 16번 나와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이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몇 번 나오지 않지만 그 쓰임새가 예사롭지 않은 말도 있는데 이 가운데 '선도국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 단어는 신년사 전반에 걸쳐 다섯 차례 나온다. 처음 나타나는 곳이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으로 새로운 시대의 선도국가로 도약'이고, 뒤이어 '선도형 경제로의 대전환' '한국판 뉴딜을 체감하고 선도국가로' 등 구절에서 쓰였다. 따라서 이 말은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 지도적인 국가를 의미하는 듯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7개 나라인 G7 국가(이탈리아를 의미)를 앞설 것이라는 전망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이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단어는 또 '소프트파워에서도 선도국가' 등 구절에서도 등장하며 대한민국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선진국 위치에 다가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프트파워는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주장한 개념으로 정치·군사적인 강제력이나 돈으로 사는 권력 등의 하드파워와는 달리 사회문화적인 매력이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문대통령은 스포츠와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성취를 자랑하며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문화적 측면에서도 선진국 수준이 됐다고 말한다. 결국 신년사는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는 선도국가'의 구절에서 드러나듯이 대한민국이 코로나 사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선진국이 되고 있다고 선언한다. 선진국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선도국가라는 얼핏 낯선 단어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자랑한 것이다.
우리가 G7 선진국이라니, 언감생심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던 그런 나라가 된 것은 너무도 자랑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되새겨야할 것은 선도국가, 또는 선진국에 다가오는 문제는 그 또한 '선진적'이라는 것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 그동안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심각한 문제가 되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미투'를 비롯해 난민 논란, '공정'을 둘러싼 쟁투 등 사회 문제와 함께 이란의 선박 나포 등 국제적인 것까지 모두 '선진국형'으로 나타나게 된다. 선도국가란 이 모든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법 또한 선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소위 '개발도상국'으로서 그동안 써 왔던 해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선진국형 문제의 해법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선도국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