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부부의 세계'(28.3%·닐슨코리아 기준 회 최고 시청률), SBS '낭만닥터 김사부2'(27.1%), SBS '펜트하우스'(23.9%), tvN '사랑의 불시착'(21.6%), SBS '스토브리그'(19.1%).
지난해 방송돼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일일·장편 주말극 제외) 다섯 작품이다. 공통점은 단어형으로 짧고 직관적인 제목. 물론 드라마 제목이 인기와 직결되는 요소는 아니지만, 시청자들 입에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짓는 게 방송가의 오랜 관행이었다.
이 짧고 선 굵은 드라마 제목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대신 구어체의 긴 문장형 제목이 요즘 유행으로 떠올랐다.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 지 몰라 숨이 턱 막히는, 20자에 육박하는 제목을 앞세운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tvN은 올해 상반기 박보영 주연의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를, JTBC는 18일부터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를 각각 방송한다. '무브투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등 올 하반기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작품과 편성을 논의 중인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까지 고려하면 올해 최소 5개의 드라마가 10자를 훌쩍 넘는 긴 제목을 달고 시청자를 찾아간다. '질투'(1992), '겨울연가'(2002) 같은 청춘 드라마 제목에 익숙한 중년의 시청자들에겐 더욱 낯설게 느껴질 흐름이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제작사인 미스틱스토리 관계자는 본보에 "기획 의도를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해",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제작사인 스튜디오앤뉴 관계자는 "호기심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긴 제목을 주저 없이 택했다고 각각 밝혔다.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경우, 드라마 제목을 '멸망'이라고 줄여버리면 재난 드라마처럼 비쳐져 극이 지닌 판타지 로맨스적 특징을 전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시놉시스(드라마 기획안)에도 이 긴 제목이 원제로 적혀 있었다.
트렌디 드라마의 주 소비층인 MZ(밀레니얼·Z)세대는 줄임말로 단절된 언어에 익숙하다. 그리고 세상의 주 무대가 된 온라인에서 환영받는 시간은 찰나다. 트렌디 드라마가 되레 긴 제목을 달고 나오는 데는 찰나의 유혹이 도처에 널린 시대에 대한 반작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여운에 대한 갈증이다.
박생강 작가는 "1~2년 전부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주로 에세이를 중심으로 긴 문장형 제목 유행 바람이 불어 음악에서도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로 시작하는 42자의 문장형 노래가 주목 받았다"며 "줄임말 등으로 단절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한 흐름들"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