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김사장의 잃어버린 1년 "지원금 받고 기뻤다? 믿기지 않아"

입력
2021.0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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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노래방 142일째 문닫으며 빚만 수천만원
정부는 강제 영업정지 하며 수백만원 지원금만
"동물전염병도 손실 보상하는데 코로나는 왜?"

"작년부터 영업 못해서 늘어난 빚만 3,000만원입니다. 그런데 한 달 임대료도 안 되는 정부 지원금을 받고, 기뻐서 눈물 흘렸다는 노래방 사장이 있다고요? 믿기지가 않네요."

12일 늦은 오후 서울 양천구 한 코인노래방에서 만난 사장 김모(47)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으로 김씨가 가게 문을 열지 못한 지 142일째다. 김씨는 최근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빚은 쌓이는데, 당장 가족들 먹여 살릴 돈이 궁해서다.

임대료는 계속 연체되고 전기요금도 밀리고 있지만, 김씨의 통장은 이미 마이너스다. 마침 이날 김씨 통장에 들어온 정부 3차 재난지원금은 300만원이었다. 일부에선 그거라도 주는 게 어디냐고 하겠지만, 정부가 강제로 장사를 못하게 한 대가로 준 돈 치고는 너무 적다. 김씨는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눈앞이 캄캄해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괴로워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정부의 영업금지·제한 조치는 일부 업종 자영업자들의 삶을 한순간에 지옥도로 바꿔 놓았다.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이들은 손실액에 비해 지원금이 너무 적다며 생색내기 수준이 아닌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달에 빚이 300만원씩 쌓인다"

김씨는 바닥을 드러낸 인내심과 은행 잔고를 붙들고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 내는 코로나 시대 숱한 소상공인 중 한 사람이다. 김씨가 코인노래방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6년째. 2019년까지만 해도 장사는 순탄했다. 한달 평균 850만원의 매출을 올려, 매달 임대료 350만원과 전기세 30만원 등 고정비용을 제외하고 수중에 300만원 정도가 들어왔다. 많지는 않아도 아내, 중학생 아들, 초등학교 쌍둥이 자매와 오순도순 평범하게 살 정도는 됐다는 게 김씨 이야기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해 2월 매출에 일부 타격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고 한다. 4월 매출이 497만원까지 감소해 수입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나 말고도 다 같이 힘드니까,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있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그러나 5월 22일, 코인노래방을 대상으로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희망은 산산이 조각났다. 영업 금지는 코인노래방 업주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정부가 매달 500만원에 이르는 고정비용을 오롯이 업주에게 떠안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50일 뒤인 7월 초 집합금지가 풀렸지만 이미 '고위험시설'로 낙인 찍힌 코인노래방은 기피시설이 된 뒤였다. 김씨는 "당시 전국 코인노래방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10명도 되지 않았는데, 다른 업종들은 내버려 둔 채 명확한 기준 없이 코인노래방만 규제를 내렸다"며 "제한 조치가 풀려도 장사가 될 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PC방 노래방도 출구 없는 터널

그 뒤로도 정부는 코로나19 재확산 때마다 코인노래방에 가장 먼저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광복절 집회발(發) 코로나19 확산 이후 8월부터 10월까지, 3차 대유행이 시작된 12월 6일부터 현재까지 김씨는 가게 문조차 열지 못했다. 6월과 9월은 아예 월 매출이 '제로'였고, 그나마 영업이 가능했던 11월도 오후 9시 영업제한으로 141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재난지원금은 피해를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서울시 및 양천구에서 지원금 200만원, 9월 정부 2차 재난지원금 200만원, 이달 3차로 300만원을 받는 등 총 7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걸로는 연체된 6개월 월세의 3분의 1 정도만 낼 수 있는 정도였다. 김씨는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생색내기용 '쇼'"라며 "영업제한 조치로 더 큰 피해를 본 업종엔 그만큼 더 보상을 해주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빚더미에 오른 것은 코인노래방 사장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영업금지 및 제한 조치 시설에 포함된 PC방이나 헬스장 업주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PC방에서 만난 사장 나성일(36)씨는 코로나19 이후 8,000만원대의 빚이 쌓였다. 나씨는 "정부는 8월 갑자기 PC방도 고위험시설이라고 집합금지를 시켰다가 20일 뒤 제한을 푸는 등 기준 없이 오락가락했다"며 "PC방은 매달 금융비용이 크고, 임대료와 컴퓨터 리스비용 등도 높은데 지원금은 겨우 400만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필라테스장을 운영하는 박재현(34)씨도 "이용을 못하는 손님들의 환불 요구가 줄을 잇고 있다"며 "직원만 10명인데, 다들 수입이 없어지고 힘든 상황이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기본권 제한했다면 보상도 뒤따라야

코로나19로 인한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했다면 푼돈을 던져줄 게 아니라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달 5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일부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영업제한 조치에는 제한만 있고 보상은 없다"고 주장하며, 감염병예방법과 각 지방자치단체 고시(영업제한)의 위헌 여부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청구인들을 대리하는 김남주 변호사는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예방법에도 제한에 따른 보상 규정이 있는데, 유독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은 어느 곳에서도 손실 보상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자영업자들의 손해를 보상하지 않는 것은 평등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긴급재정명령에 준하는 행정조치 등을 통해 임대인이 임대료를 감면하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그 감면분의 일부를 분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1년 가까이 매출 감소가 지속돼 임차상인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긴급명령을 통해 임대료를 감면하도록 하고 감면분 일부를 지원하거나 이자감면 조치를 취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엽 기자
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