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탄핵 위기에 몰렸다.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 탄핵 추진 때는 대통령 권한 남용 등이 이유였다면 이번에는 6일 발생한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선동 혐의가 적용됐다. 민주당은 하원 탄핵소추안 발의와 표결까지 속전속결 전략으로 나섰다. 하지만 상원 문턱까지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 17명 이상의 동조자가 나오기 힘들고, 탄핵 공방 장기화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행보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민주당은 11일(현지시간) 오전 예고대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 의사당 난입 사태 후 일주일도 안 돼 실제로 칼을 빼 든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의 의사당 난입 과정에서 ‘내란 선동’ 혐의가 있다고 적시했다. “의도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한 폭력을 유발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 사전 집회에서 “당신들의 힘을 보여달라”고 말했고 시위대는 집회 직후 의사당으로 이동해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의회경찰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사망하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당은 탄핵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와 정부제도를 심대한 위험에 빠트렸다”며 “그가 직에 계속 있으면 헌법, 민주주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탄핵 후 공직 자격 박탈까지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2024년 대선 재출마를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수정헌법 25조를 적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결의안도 제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4시간 내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내각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탄핵안을 의결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예정대로 13일 탄핵안 표결을 진행한다면 하원 435석 중 과반(218석)을 넘는 222석을 확보하고 있어 통과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2019년 12월에도 우크라이나 스캔들 탄핵안이 하원에서 가결된 적이 있다.
관건은 상원이다. 100명의 상원의원 중 3분의 2(67명) 이상이 찬성해야 상원에서 탄핵이 가능한데 공화당 의원만 50명이다. 리사 머코우스키, 팻 투미,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제 탄핵안 표결에서 반란표가 얼마나 나올지는 불분명하다. 공화당 원내 전략을 지휘하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이미 19일 전에는 상원 표결을 잡지 않겠다고 못박았고, 탄핵안 처리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첫 탄핵안도 지난해 2월 상원에서 부결됐다.
펜스 부통령의 선택도 중요하다. 그가 수정헌법 25조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 조기 퇴진을 성사시키는 방법도 있다. 다만 펜스 부통령이 민주당에게 득이 될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공화당 톰 리드 하원의원처럼 트럼프 대통령 규탄 결의안 채택 정도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시도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자세를 낮추고 있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시장이 요청한 바이든 당선인 취임식 경비 관련 비상사태 선포 건의를 이날 오후 받아들였다. 백악관은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 재난관리청(FEMA)이 취임식 준비에 공식 협력하도록 지시했다. 필요한 장비와 예산 지원이 이뤄지면서 13일부터 워싱턴 일대에 병력이 배치돼 상황을 통제하게 된다.
또 의사당 사태 후 처음으로 펜스 부통령을 만나 상황도 협의했다. 12일 자신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멕시코 국경장벽 현장 점검을 위해 텍사스주도 찾는다. 일상적인 대통령 업무를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탄핵 관련 입장을 표명했다. “하원이 탄핵안을 처리해 상원에 송부했을 때 절차를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는지가 문제다. 하루의 반은 탄핵을 다루고 (나머지) 반은 지명자 인준과 (코로나19) 경기부양안 추진에 쓸 수 있을까. 그게 내가 희망하고 기대하는 바”라는 것이다. 상원에서 탄핵 심리가 진행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 내각 인준 절차와 법안 통과 ‘투트랙’이 어려울 수 있어 고민이라는 얘기다. 취임 초 국정 운영에 힘을 받아야 할 시기에 탄핵 공방 블랙홀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바이든 측의 우려다.
때문에 민주당 원내 지도부에서는 일단 하원에서 탄핵안은 통과시킨 뒤 상원으로 송부하는 시점은 늦추는 전략이 거론된다.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초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을 본 뒤 100일 후인 4월 말 5월 초쯤 탄핵 심리를 재개하겠다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