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표지 모델 쓴 美 보그지에 비난 쏟아진 까닭은

입력
2021.01.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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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 해리스 당선인, 조명으로 하얗게" 지적
'패션계 거물' 보그 편집장에 비난 쇄도
일부러 어색한 사진을 표지로? 인종차별 논란도

미국의 패션지 보그가 2월호 표지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선정해 촬영한 사진을 두고 '화이트 워싱' 논란이 일고 있다.

최초의 아프리카-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마치 백인처럼 보이는 사진을 표지로 사용해서다. 또한 해리스 당선인 측은 "합의된 사진이 표지로 쓰이지 않았다"며 어색한 포즈의 사진을 사용한 보그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그의 카멀라 해리스 표지 사진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며 "보그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그러면서 보그가 화이트 워싱 논란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화이트 워싱이란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공각기동대'도 2017년 영화 버전으로 만들어졌을 때 여주인공을 동양인이 아닌 백인(스칼렛 요한슨)으로 캐스팅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그는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해리스 당선인의 사진 2장을 공개했다. 비둘기색 수트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검정색 재킷과 진에 스니커즈 운동화를 착용한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확인한 네티즌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 속 해리스 당선인이 너무 밝은 조명 탓에 백인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 네티즌은 "해리스는 유색 인종이지만 보그가 그의 조명을 망쳐 놓아 피부가 밝게 표현됐다"고 지적했다.


'패션계 쥐락펴락' 안나 윈투어에 비난 쇄도

그러면서 보그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도 비난을 받고 있다. 세계 패션계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실제 모티브가 돼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로 그려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와자하트 알리는 "안나 윈투어는 흑인 친구나 동료가 정말 없을 것"이라며 "내 삼성 제품을 이용해 해리스 당선인을 찍어도 보그 표지보다 더 잘 나올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윈투어는 지난해 미국 내에서 들불처럼 번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 때에도, 이 이슈에 무감각한 잡지 내용으로 질타를 받았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내 "보그는 흑인 편집자와 작가, 사진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다른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더 내주는 등 충분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처를 주거나 편협한 이미지나 이야기를 출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그런 실수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싶다"고 뒤늦은 사과를 했다.


표정과 포즈 어색한 사진 선정?...'인종차별' 논란도

또한 알리는 해리스 당선인의 사진을 두고 인종차별 논란도 제기했다. 그는 트위터에 블랙 재킷을 입고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많이 악의적인 표지가 이미 인쇄돼 구독자에게 발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가 공개한 사진에는 블랙 재킷을 입은 사진 표지에 가격 등이 적힌 코드가 찍혀 있다.

보그는 이날 사진 공개와 함께 글도 올렸다. "해리스 차기 부통령은 2월 커버 스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훨씬 더 기념비적인 임무를 맡고 있다"며 "분열된 미국을 치유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알리가 지적한 사진은 어색한 표정과 포즈가 두드러져 보인다.

반면 비둘기색 수트를 착용한 사진은 팔짱을 낀 채 당당한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한 네티즌은 "해리스의 더 나쁜 사진을 사용하는 건 인종 차별인가 아니면 단순한 여성혐오인가?"라고 비난했다.

호주의 ABC방송에 따르면 해리스 당선인 측은 블랙 재킷 차림의 사진이 아닌 비둘기색 수트 사진을 표지로 선정하기로 보그 측과 합의했다. 해리스 당선인 측은 사진이 공개될 때까지 잡지 표지 사진이 바뀐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 같은 결정에 보그에 실망감을 표현했다고 방송은 밝혔다.

하지만 보그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두 사진 중 어떤 사진을 잡지 표지로 사용할 것인지, 또 두 사진을 모두 게재할 것인지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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