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회 "정인이 췌장 절단되려면 황소에 부딪친 충격 있어야"

입력
2021.01.11 17:50
"흔들다가 떨어뜨렸다" 양모 주장과 배치
검찰, 양모에 살인죄 추가적용 적극 검토
어린이집 원장인 외조모 처벌은 어려워

양부모 학대로 16개월 영아가 숨진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에서, 검찰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정인이를 흔들다가 떨어뜨렸다"는 양모의 주장과 달리, 정인양이 숨진 정도의 충격이 있으려면 황소에 부딪치는 정도의 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검찰은 이 분석 등을 토대로 양모에게 살인과 관련한 고의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11일 검찰 등에 따르면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검찰에 정인양 사건과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의사회는 정인양의 사례처럼 외력으로 췌장이 절단되려면 △자동차 대 사람의 교통사고가 난 경우나 △황소 머리에 배를 받힌 수준의 충격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의사회는 정인양의 양모 장모(34)씨에게 고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앞서 장씨는 정인양의 사망 경위를 설명하며 "아이를 흔들다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진술했는데, 그런 정도 행위로는 췌장이 끊어지는 충격에 이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인 셈이다.

이런 분석 등을 바탕으로 해, 검찰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이미 기소된 양모 장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지를 적극 검토 중이다. 정인양 사인이 이미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췌장 절단 등)으로 판명됐기 때문에, 이 행위에 살인과 관련한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죽이겠다는 고의가 있거나 △이 행위의 결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인식(미필적 고의)이 있어야 하는데, 정인양이 받은 충격에 비춰 이런 고의를 입증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또한 이미 기소된 양부·양모와 별도로, 정인양 양육 과정에서 양모의 어머니(정인양의 외할머니)가 개입한 정황도 확인됐다. 홀트아동복지회 사후관리 기록에 따르면, 정인양 사망 20여일 전인 지난해 9월 21일 홀트 상담원이 정인양 영양 결핍을 우려해 비타민을 전달하러 가정방문을 문의했을 때, 양모 장씨는 자기 어머니(A씨)의 방문을 이유로 홀트 측 방문을 거부했다. A씨는 이때 딸 장씨의 가슴 수술 때문에 일주일 가량 장씨 집에 머물며 몸조리와 보육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장씨 집에 머무른 시기는 이미 정인양을 학대하고 있다는 의심 신고가 2차례 이뤄진 시점이다. 입안 상처와 체중 감량 등 학대 징후도 나타난 시기다. 이틀 뒤인 9월 23일에는 소아과 의사의 3차 신고가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 비춰 A씨가 정인양 학대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A씨는 경북 지역에서 교회 소속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보육시설 종사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어린이집 원장 등 보육시설 직원은 아동학대나 의심 정황이 있으면 경찰 등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A씨를 도의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신고 의무 위반이나 방임 등을 이유로 형사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학대 사건을 다뤄온 조세희 변호사는 "A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원생의 학대 의심 경우에 한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외할머니인 A씨는 아동복지법상 '보호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방임 등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아동학대 피해자의 국선변호를 맡아온 변주은 변호사는 "함께 생활한 양부는 방임을 피해갈 수 없지만, 잠깐 돌봐준 외조모는 주양육자로 보기 힘들다"며 "학대 사실을 알았을 수 있지만 부인하면 입증할 수 없어 기소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