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67)씨는 연세대 경영관에서 5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다. 그가 하루 6시간씩 주 6일 근무하며 받는 월급은 120만원 남짓이다. 고씨는 경영관 맞은편 백양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A씨와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처지가 좀 다르다. 둘 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A씨는 전일제(오전 6시~오후 4시), 고씨는 시간제(오전 11시~오후 6시) 계약이라는 차이가 있다. 시간제 노동자들은 전일제보다 처우가 좋지 않다. 같은 크기의 건물이라도 더 짧은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 하는 탓에 업무 강도는 높은 반면, 열악한 휴게공간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간접고용 구조 안에서도 고씨가 상대적으로 더 약자인 셈이다. 고씨는 "그나마 나는 6~7시간 정도 일할 수 있어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동료 중엔 하루 3~5시간 일하며 월급 100만원을 겨우 받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2011년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170명이 집단 해고됐던 '홍익대 사태' 후 대학 청소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일보 취재결과 10년이 지났어도 근무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전일제 노동자 자리를 시간제로 대체하거나 근로시간을 일방적으로 단축시켜 원성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청소노동자에게 있어서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비정규직 백화점' '간접고용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연세대에는 고씨와 같은 시간제 노동자가 46명이나 된다. 학교가 건물을 증∙개축할 때마다 시간제 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용역업체에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연세대에 시간제 노동자가 본격 등장한 건 2015년 9월 경영관이 신축되면서다. 이전까지는 하루 8시간의 전일제가 일반적이었는데 시간제를 제시한 C업체가 경영관 용역업체로 선정되며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C업체가 2015년 이후 연세대에서 신축되는 건물의 청소일을 도맡게 된 것도 시간제 노동 고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간제 노동자의 업무량은 전일제에 비해 많다. 연세대 제4공학관의 경우 다른 건물에 비해 면적이 유독 넓은 편인데 시간제 노동자 2명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4개층 청소를 오전 중에 끝내야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모(58)씨는 "교수와 학생들이 출근하고 등교하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해서 오전 내내 1분도 못 쉬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시간제 노동자의 경우 쉴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들이 근무하는 연세대 건물 4곳 중 3곳은 휴게실이 지하에 있다. 10명 이상의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경영관은 지하 휴게실이 비좁아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휴게실이 아예 없는 Y-ibs관 노동자들은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버티는 실정이다. 이경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장은 "전일제 노동자의 휴게시설은 연세대 43개 건물 중 2개를 제외하고 대부분 개선됐지만, 시간제 노동자 휴게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같은 청소노동자라고 해도 전일제냐 시간제냐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제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2016년부터 연세대에서 시간제 노동자로 근무한 윤모(68)씨는 "처음부터 시간제로 계약해서 이게 당연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털어놨다. 시간제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3.9%로 전일제(92.8%)에 비해 크게 낮아,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도 조직적 대응이 쉽지 않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연세대분회와 재학생들이 지난해부터 C업체의 퇴출을 요구해, 올해부터 O업체로 교체됐다. 그러나 시간제 노동자들 사이에서 근로조건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O업체는 하루 근로시간을 한두 시간씩 줄이고 월 10만원 안팎이던 식대마저 없앤 근로계약서 초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아직 O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 김모(64)씨는 "지난해까지 하루 6시간 일했는데 일방적으로 2시간을 줄이려는 것 같다"며 "월급은 깎이고 할 일은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인건비는 줄이고 일은 많이 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정년퇴임자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는 방식이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고령자라 매년 정년퇴임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신규 채용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올해 3명의 노동자가 정년퇴임해 결원이 발생했지만 인력 충원 대신 다른 건물 노동자를 결원이 발생한 자리로 재배치했다. 양미자 이화여대분회장은 "학교 측이 개조·증축하는 건물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 8명 중 4명을 퇴직자 작업장으로 이동시켰고, 나머지 4명에겐 휴직을 종용했다"며 "건물보수 작업이 끝나도 현재 인원 그대로 운영되면 업무가 과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덕대 역시 청소노동자 숫자가 2012년 32명에서 현재 21명으로 3분의 1이나 줄었다. 김묘순 인덕대분회장은 "올해 들어 5명이 정년을 채워 나갔는데 학교 측은 경영상 이유라며 1명만 충원했다"고 말했다. 이류한승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직부장은 "대학들이 3~4년 전부터 퇴직자 자리를 충원하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인원을 줄이고 있다. 외주하청 구조의 가장 밑바닥인 청소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해당 조직의 노동 철학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며 대학들의 책임있는 행동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