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막장드라마의 거의 모든 걸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부추겨놓고선 파장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돌연 “내 초점은, 질서있고 빈틈없는 정권이양을 보장하는 것으로 전환한다”고 꼬리를 내렸다. 심지어 하루가 지나자 이들을 “극악무도한 행위”라며 “미국 민주주의를 더럽혔다”고 맹비난했다. 전날 백악관 앞 집회에서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의사당으로 가라고 선동한 그가 이토록 비겁한 민낯을 보였는데도 ‘트빠’들은 여전히 그를 숭상하는지 의문이다. 퇴임 후 감옥에 가는 게 두려운지 찌질한 모습이다. 뒷감당도 못하면서 큰 소리만 치고 보는 모습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의사당 점거 사태로 5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부정선거를 맹신하는 국내 보수 일각도 꿈에서 헤어나올 때가 됐다. 미 의회 난입 당시 낯익은 태극기가 등장해 보는 사람들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트빠’나 ‘태극기’들은 아직도 부정선거 신기루에 빠져있다. 앞서 민경욱 국민의힘 전 의원은 4·15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며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주장도 폈다. 야권에서 공병호씨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한 바 있다.
특정 정치인이나 유명인에 기대 전체주의적 습성에 빠지는 ‘팬덤’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깨문’이 대표적이다. 팬덤의 폐해는 옳고 그름이나 상식적 가치기준이 손쉽게 허물어진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경우처럼 지지를 받는 정치인도 결국은 해를 입게 된다. 미국의 ‘뉴스맥스’나 ‘원 아메리카 뉴스네트워크’, ‘게이트웨이 펀딧’ 같은 ‘정크 매체’들이 자극적인 의혹을 퍼뜨리면 트럼프 측이 이를 인용하고, 대중은 사실로 믿는 가짜뉴스의 확대재생산이 이뤄졌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각종 음모론을 퍼나르며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파고드는 확증편향에 매몰되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일베’ 같은 온라인커뮤니티가 젊은이들의 정신을 썩게 만드는 구조와 동일하다.
트럼프가 낙선한 게 한국에겐 차라리 천만다행이었다. 한반도 운명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에게 덜미잡히긴 상상도 하기 싫은 탓이다. 미국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열시키는 인물이 타국의 운명에 진지할 리 만무하다. 북미정상회담 쇼만 벌인 그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한국은 바이든 정부와 내실있는 한미동맹 회복에 매진해야 할 차례다. 당장 바이든 정부가 무조건적인 ‘트럼프 색깔지우기’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미전략을 무리없이 대응해 나갈지 쉽지 않은 과제가 던져졌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민주정권은 미 공화당 정부와 마찰이 컸던 게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는 빌 클린턴 정부와의 공감을 배경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듬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정권 등장 후 한미 간 엇박자가 심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와도 사이가 껄끄러웠다. 이번이야말로 제대로 궁합을 맞춰야 할 순간이다. 벌써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핵잠수함을 언급하며 한국과 미국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갈수록 임기 말 외교성과가 다급해질 우리 쪽과 달리, 이제 막 출범하는 바이든 쪽은 한반도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제쳐둘 수 있다. 영 꺼림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