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5년 만에 비서제를 부활했다. 규약 서문에 국방력 강화 내용을 추가하면서도 "군이 당의 영도를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반적으로 당 중심의 통치체제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유일한 ‘위원장’으로 남겨 권위를 확립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진행된 당 대회 5일차 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에 관한 결정서가 채택됐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규약은 당 강령과 함께 조선노동당을 규율하는 북한 최고 권위의 문헌이다. 신문은 “당건설과 당활동의 지침이며 당조직들과 당원들의 행동규범이자 활동준칙”이라고 당규약을 규정했다.
아직 규약 전문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5년 전 신설됐던 정무국을 다시 비서국으로 되돌린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신문은 “각급 당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정무처를 비서처로 고쳤다”고 전했다. 각 정치조직 책임자 직제 중복에 따른 혼란을 막고 당의 권위를 철저하게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김일성 유일지배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1966년 설치된 비서국은 이후 당의 최고집행기관으로 기능했지만 2016년 정무국으로 대체됐다. 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젊은 새 지도자를 위한 형식적 변화였다.
비서국 부활 역시 전문가들은 ‘김정은 권위세우기’ 차원으로 분석했다. 김 위원장을 다른 위원장들과 구분 짓기 위해 개편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 직함 변화는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며 “'당 위원장과 국무위원장은 김정은 하나'라는 권위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도 “김 위원장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도 ‘당 비서’ 등으로 직함이 수정되거나 선대의 ‘총비서’ 호칭처럼 수식어를 붙인 새 직함을 만들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내다봤다.
각종 회의를 효율적으로 열 수 있게 절차를 손본 건 새로운 시도다. 그 과정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상무위원들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정치국회의 사회 권한을 위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두고, 현재 5인 체제인 상무위원회가 확대되고 김 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상무위원회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토의 문제의 성격에 따라 회의성립비율(의사정족수)에 관계없이 당중앙군사위를 소집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북한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연상케 한다.
서문에서 "공화국 무력을 정치 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부단히 강화한 데 대한 내용을 보충했다"고 강조하면서도 군이 당의 영도를 받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를 삭제하고, 대신 김 위원장이 강조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사회주의 기본 정치방식으로 당규약에 명시했다. 양 교수는 “당의 존재 이유가 인민, 애민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내외에 알림으로써 당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당대회를 5년에 한 번씩 소집할 것을 재규정하고, 당원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도 새 규약에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