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후반부-바이든 초입에서 '조건부 평화' 던진 北

입력
2021.01.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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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향후 5년 간의 전략 노선을 제시하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한미 양측에 ‘조건부 평화’ 카드를 던졌다. 남측엔 "남측의 태도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미국에는 '강대강(强對强) 선대선(善對善)' 원칙을 나란히 제시하며 '대화냐 대결이냐'의 선택지를 한미에 각각 넘겨버린 것이다.

한미가 북한이 내건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력이 떨어져 있는데다, 이제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임기 초반 대북대화에 드라이브를 걸 여지 또한 크지 않아서다.

대남 "움직이는 만큼 상대할 것"...대미 "최대 주적"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업총화 보고를 지난 9일 보도했다. "남북관계 현 실태는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한 김 위원장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소동이 계속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북남관계개선의 전망은 불투명하다"면서 한미연합훈련을 관계개선 장애물로 규정했다. 또 "더 정확하고 강력하며 더 먼 곳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느니, 세계 최대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느니 하던 집권자가 직접 한 발언들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라며 전술 무기 개발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줘야 한다"면서 "남조선 태도 여하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방역 협력과 금강산 관광 등 우리측의 제안에 대해선 "비본질적 문제"라면서 사실상 거부했다.

이번 달 출범을 앞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대해서도 첫 메시지를 던졌다. 김 위원장은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면서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이자 최대 주적"이라고 규정, 기선 제압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3월 한미훈련 첫 분수령

결국 전면적 대화 무드로 당장 전환할 의지는 없다는 게 김 위원장의 의중으로 압축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0일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열어뒀지만, 한미군사훈련과 군사장비 반입 중단 등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다"면서 "남북관계 개선 기대감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자신들이 내건 조건을 우리 측이 충족할 것이란 기대 자체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하노이 회담 이후 적대시정책 철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 수립에 반영하라는 우회적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의 운신 폭은 크지 않다. 방역협력이나 개별관광 등 김 위원장이 이미 거부한 제안을 다시 꺼내긴 민망하다.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추진할 시간도 불충분하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이 즉각 내놓은 논평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해 나간다는 정부의 입장은 일관된다” “남북 합의를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극히 원론적 내용이었다. 11일 예정된 문 대통령 신년사 역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방역협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수준의 대북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되레 오는 3월 한미연합훈련 여부를 남측의 대북관계 개선 의지의 시험대로 활용하며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연합훈련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활발했던 지난 3년 간 대체로 축소 실시돼 왔으나, 바이든 행정부 첫 한미훈련이란 점에서 그간 대북 로키(Low key) 기조를 그대로 따를지는 의문이다. 당국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강화 움직임에 호응하면서도 북한의 반발 가능성을 컨트롤해야 하는 복잡한 시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조영빈 기자
강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