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을 듣는 시간, 한국인을 발견하는 시간

입력
2021.01.08 22:39



“자, 선생님 들어보세요. 왜 제 연주가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제자가 스승에게 대들었다. 가야금산조의 명인 심상건(沈相健, 1889∼1965)의 수업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연주를 했는데도 선생은 늘 “그게 아니야”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제자가 선생의 소리를 몰래 녹음한 뒤에 들려준 뒤에 “배운 대로 했다. 뭐가 틀렸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그때 선생이 국악의 정수가 담긴 ‘변명’을 내놓았다.

“그건 어제의 소리지 오늘의 소리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음을 다루는 방식이 사뭇 독특했다. 가수 송창식은 서양인들은 하나의 음정을 하나의 점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다르다고 했다.

한글의 영향으로 우리네 말이 문자의 속박을 거의 받지 않고 음을 표현하듯이 우리네 음악인들도 음을 다루는 기술이 유려하고 자유로웠다. 심 선생의 가르침도 같은 악보 안에서도 다양하고 풍성한 소리를 빚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피아노와 첼로 사이에 해금이 놓인 풍경을 본 적이 있다. 피아노가 내는 음은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계단 같았고 첼로는 정확한 비율로 설계된 고풍스런 성당을 연상시켰다. 그에 비해 해금은 자연의 일부 같았다. 해금은 두 줄의 현을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끝으로 어림잡아 당기고 풀면서 음정을 조절한다. 구획이 모호해 초보자에겐 어렵지만 또 그만큼 숙달될수록 깊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어제의 소리지 오늘의 소리가 아니다.”

‘같은 악보로 다른 소리’를 낸다는 뜻일 것이다. 삶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고 지난주와 별반 차이가 없다. 10년 단위로 크게 변한다지만 좁혀서 보면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이다. 심 선생의 음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우리 민족이 일상을 대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어제와 똑같은 일과표를 가지고도 오늘은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이래서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인생이 한 곡의 긴 노래하면 오늘 하루는 한 개의 음이다. 환경과 여건의 속박에서도 다른 삶을 살아내는 이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원하는 성과를 얻어낸다. 더 넓게 보자면, 식민지라는 참혹한 역사를 겪은 이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가 깜짝 놀라는 성과를 낸 비결도 음을 다루는 태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가정이 옳다면 우리 음악, 우리 가락은 미래를 향한 약속이나 다름없다.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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