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8일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을 명령한 한국 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 이후 반목을 거듭해 온 한일관계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한국 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만큼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그간 국제관습법의 ‘국가(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소송 참여 자체를 거부해 왔으며 이번 소송도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앞서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판권에 종속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오는 13일 선고가 예정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다른 위안부 피해자의 소송도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오전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이 같은 입장을 설명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남 대사는 10분간 면담 후 외무성을 나서며 “우리로서는 한일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일본 측은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외무성 간부는 “상식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스가 총리를 만나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 양국관계 개선을 타진하기도 했으나 이번 판결로 시계 제로 상황에 놓였다. 스가 총리는 한일관계에 대한 대처 방침에 대해선 "우선 소송이 각하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일본이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1심 판결로 확정될 전망이다. 일본 측이 경계하는 것은 민간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 배상 소송과 달리 이번에는 국가를 상대로 했다는 점이다. 이에 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속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은 일본 기업 자산이 한국 사법부에 압류돼 현금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판결로 향후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 집행이 실현된다면 2019년 수출규제 강화와 같은 대항조치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다만 현재로선 대항 조치를 언급하기 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토 장관은 국제사법재판소(ICJ)나 외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응 방안에 대해 “관련국에 필요한 설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중개한 미국 등에 자국 입장을 설명해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ICJ 소송은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만큼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날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이스라엘 대사의 주한 일본대사 부임을 결정했다. 한류 팬으로 알려진 아이보시 신임 대사와 지일파로 통하는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는 새로운 난제를 앞두고 각각 이달 중 상대국에 부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