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약품 구매 10억 달러 지속적 요구... 정부, '창의적 송금방법' 찾는 중

입력
2021.01.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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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통 "10억 달러 요구는 어제 오늘 일 아냐"
미 제재망 우회할 확실한 방안이 열쇠
청해부대 움직임엔 "해적 취급이냐" 반감


이란 정부가 한국 내에서 동결된 원유 수출 대금 가운데 10억 달러(약 1조800억원)를 백신 등 의료 장비 구매비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대통령 친서까지 보내며 우리 정부에 요청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이란으로 출국하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미국의 제재망에 걸리지 않는 안전한 송금 방안을 들고 오라는 게 현재 이란의 요구인 것으로 압축된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창의적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2차례 친서 보내


한-이란 간 최근 기류를 잘 아는 국내 소식통은 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란은 지난해부터 의약품 구매를 위해 한국에 묶인 자국 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애타게 문의해 왔다"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문 대통령에게 두 차례씩이나 친서를 보내, 의료품 구매비가 다급한 사정을 알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한국 측이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했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니 서운함이 최근 증폭된 것"이라고 했다. 이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금까지 5만5,000명 넘게 사망했다. 다만 지난 5일 한국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이유가 이 때문인지에 대해선 "불확실하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현재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엔 이란 원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7조6,000억원)가 동결돼 있다. 2018년 복원된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따른 조치다. 이를 돌려달라는 이란 정부의 요구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동결 자금을 이란에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실제 국제 백신 공동구매 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2,000만 달러 상당의 백신을 대리 구매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 정부의 특별승인도 얻은 상태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 송금 관련 "창의적 방안 고려 중"


하지만 이란 측은 원화 자금을 미국 은행에서 달러화로 환전하고 코백스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 돈이 미국 은행에 들어가는 순간, 미 재무부의 제재에 따라 다시 동결될 것이라는 게 이란 측의 우려다. 소식통은 "결국 이란 측과 접촉할 예정인 최종건 차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차관이 이번 이란 방문에서 미국 제재망을 피할 수 있는 송금 방안을 제시할 경우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 문제도 긍정적으로 풀릴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한국에 대한 이란 내 격앙된 분위기는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이란 측에 제시할) 여러가지 창의적인 방안들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적 목적의 송금의 경우 제재에서 예외로 한다는 미국의 확실한 보증을 담보하거나, 유로화 환전을 통한 송금 방안 등이 거론된다. 최근까지 요구해 온 금액이 10억 달러이지, 이번 협의에서 더 큰 액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 측은 지난 4일 한국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 나포 뒤 청해부대가 나포 인근 해역으로 이동한 데 대해서도 불만감을 표시하고 있다. 소식통은 "해양 오염 혐의에 따른 한국 선박에 대한 적법한 조치라는 이란의 입장은 완강하다. 그런데 한국 측에선 '돈 받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군함까지 움직이니, 자신들을 해적 취급하는 것이냐는 반감이 크다"고 전했다.



조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