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의 '불미한' 말장난

입력
2021.01.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불미(不美)하다’의 뜻을 찾아 봤다. 혹시 남녀 사이의 일을 두고 ‘불미스럽다’고 할 때 범인(凡人)들이 떠올리는 상황이 틀린 것일까 해서다. 다른 뜻은 없는지도 궁금했다. 의미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한 데가 있다’다. 사전은 ‘불미스럽다’의 첫 예시문으로 ‘남녀 간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적시하고 있다. ‘추잡’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지저분하고 잡스럽다’는 뜻이니, 일반의 생각이 과히 틀리진 않아 보인다.

□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당과 여성계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소 예정 사실을 서울시에 알린 의혹에 대한 해명 때문이다. 그는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고 물은 게 전부라며 사건 내용은 들은 바 없다고 강변했다. 검찰 발표 6일 만의 해명치곤 어쭙잖고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 피해자 변호인이 여성단체 대표에게 ‘고소 예정 사실’을 알리고 ‘지원 요청’을 한 게 시작이다. 그리고 남 의원 연락을 받은 특보는 박 전 시장에게 “피해자 ‘고소가 예상’되고, 여성단체와 함께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남 의원의 선과 후 모두 ‘성폭력 피소’를 가리키는데 남 의원만 ‘불미스러운 얘기’로 둘러대며 성폭력 피해나 ‘피소’를 몰랐다고 발뺌하니 “담배는 피웠으나 연기는 안 마셨다?” ’피소’는 몰랐고 ‘피소 예정’은 알았다? 둘이 다르냐”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거다.

□ 남 의원은 여성운동 경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 인권, 성폭력 피해자 보호보다 정치인으로서 기득권 지키기에 더 급급한 듯하다. 그는 입장문에서 피해자에게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를 드린다’고 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과가 피소 내용 유출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음직하다. 지난해 7월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사과 성명 발표 당시 남 의원이 ‘피해 호소인’ 표현 사용을 주도했다니, ‘여성계 대모’라는 수식이 부끄럽다. 남 의원은 정치 입문의 초심을 돌아보기 바란다.

황상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