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서사
한달 고작 169만원을 받는 청소 노동자들이 떼인 수당이라도 받아내겠다고 만든 노동조합. 그 대가는 해고였다. 우리 사회가 '중간착취'의 지옥이 되기까지 작동해온 벽돌처럼 단단한 시스템이다. 파견·용역업체 등은 간접고용 노동자에 거머리처럼 붙어 임금을 떼어먹고, 혹시 이들이 항의라도 하면 원청과의 교감속에 해고하면 그만인 시스템.
사실 법적으로 해고도 아니다. 파견이나 도급, 위탁 등의 용역계약 해지는 법적으로 해고에 속하지 않는다. 때문에 해고를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임금가로채기와 같은 중간착취를 비롯해, 여러 갑질에 맞서지 못하는 이유는 고용불안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과 새해 벽두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겐 '공포의 시간'이다. 원청의 계약업체 변경과 맞물려 순식간에 일터를 잃을 수 있어서다. 폭력적인 현실을 침묵시키는 거대한 시스템은 매일 매일 돌아가고 있다.
2021년 새해에도 수백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가 계약 종료와 동시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는 청소 용역업체를 교체하면서 기존 청소 노동자 80여 명의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LG그룹의 계열사 건물관리를 하는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 청소업무를 재하청했던 지수아이앤씨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생긴 일이다.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두 고모가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회사로 2010년부터 LG트윈타워의 청소 용역을 맡아왔다.
10년만에 '서비스 품질 저하'를 이유로 재하청 회사가 갑작스레 교체됐고, 새로 입찰 된 업체는 기존 인력 대신 사람을 다시 뽑겠다고 선언했다. 청소와 경비, 시설관리 등은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고용승계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기에 이례적인 일이었다.
청소 노동자들은 최근 생긴 노조에 가입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 분회장은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정년은 없고 몸만 건강하면 계속 일하라더니 말을 바꿨다"라고 전했다.
울산 동강병원 영양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해당 사업장에 노조가 처음으로 생겨 기존 위탁운영 업체와 노동조건 등을 두고 교섭하던 중 외주업체가 바뀌었다. 새로 들어온 동원홈푸드는 조리원들 대신 다른 인력 파견업체에 재하청을 줬다. 1994년 영양실이 외주화된 이후 업체가 바뀔 때 마다 늘 별탈 없이 이뤄진 고용승계였다. 영양실 조리원들은 월 170만원 최저임금 정도만 받으면서 평균 10년 동안 일해온 사람들이었다.
OB맥주 경인직매장 물류노동자 25명 역시 지난해 하도급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실직자가 됐다. '전원 고용승계 예정'이라는 기존 업체의 말을 믿고 퇴직 절차를 밟았으나, 새로 들어온 업체는 선별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 역시 연차수당과 불합리한 업무지시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다 노조를 만든 상태였다.
원청과 하청업체가 '보복성 집단해고'를 일삼으면서 가뜩이나 낮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더욱 뒷걸음질 쳤다. 2019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전체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9.9%. 반면 파견 노동자와 용역 근로자는 각각 0.5%와 1.7%를 기록했다. 2년 전 정례조사에 비해 각각 1.9%포인트와 2.5%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부당하다 목소리를 내고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라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G트윈타워의 청소 노동자들은 그간 격주 토요일마다 나와 청소를 하면서도 수당은 받지 못했다.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면 4월부터야 임금에 적용됐다. 1~3월까지의 최저임금 상승분은 떼어먹은 셈이다. 박 분회장은 "노조를 만들고 나니까 1월 1일부터 딱딱 맞춰서 주더라"고 전했다.
서울지역 도시가스 민간위탁 검침원들도 서울시가 정한 월 급여 가이드라인(163만 원)보다 10만~20만원 덜 받으면서 일하다가 2017년 노조의 탄생과 함께 조금씩 나아갔다. 파업과 사측의 고소·고발 끝에 가이드라인에 맞는 월급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여의도의 또 다른 고층빌딩, 한국거래소 역시 지난해 청소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LG트윈타워와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노조와 이전 업체는 만 70세 정년을 합의했지만, 새 업체는 받아들이지 않고 10여 명 노동자의 고용 승계를 거부했다. 임금 역시 최저임금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주휴수당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참지 않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거센 항의에 나섰다. 그러자 지난달 새 용역업체는 이들에게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는 대부분 소박하다. '계속 일하게 해달라' '최저임금을 보장하라' '연차·휴일수당을 달라' 등 당연한 권리들이다. 한국거래소에서 15년을 일한 정모(65)씨가 "노조를 만들고 나선 많이 받게 됐다"면서 품 속에서 꺼내 보여준 지난해 12월 월급명세서에는 '173만원'이 적혀있었다. 최저임금(8,590원)보다 시간당 210원이 더 많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모든 걸 걸고 받아낸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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