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 학대로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입양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양 부모에 대한 자격심사와 입양아에 대한 사후적인 관리지원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입양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아동학대라는 사안의 본질을 흐릴 우려도 제기된다.
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는 정인양의 양부모에 대한 입양심사를 한 후 지난해 1월 가정법원에 입양 허가를 신청했다. 각종 서류와 상담, 교육 등을 통해 양부모가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승인을 받아 입양이 이뤄진 후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황이 제기됐다. 홀트복지회는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뒤인 2차 가정방문(5월 26일)을 통해 정인양에 대한 학대 정황을 파악했지만, 이후 5개월 가까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놓고 민간 기관이 주축이 돼 예비 양부모를 심사하는 현재의 입양제도 자체가 허점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이다. 현행법은 예비 입양부모의 재산 상황, 입양아동을 양육하고 교육할 수 있는 능력 여부, 범죄 경력 유무 등의 조사를 입양기관이 맡고 법원이 최종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승인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현직 판사는 “입양하려는 부모가 많지 않아 불허 결정을 내리면 대부분 고아로 자라게 된다"며 "그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허가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민간단체인 입양 기관에 의해 입양 절차가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2018년 ‘입양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입양을 위해 존재하는 민간기관이 예비 입양부모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며 "외국에는 입양기관에 조사를 전적으로 맡겨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위한 입양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한 어른을 위한 입양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정인양 양부모도 친딸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입양 심사 과정이 실무자 개개인의 역량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기관을 통해 예비 입양부모 조사가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입양이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져선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에서 문제의 본질은 입양이 아니라 아동학대”라며 “대중적 공분이 이는 상황에서 입양 절차를 문제 삼음으로써 입양 가정이 또다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양한 딸을 키우고 있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본질을 왜곡시키지 마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도 "언론이나 정치권에선 계부모나 양부모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에 유독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건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입양이 줄어든다면 그게 더 큰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