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전문기관, 정인이 '단순 구내염 아냐' 의사 소견 받고도 돌려보냈다

입력
2021.0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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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소행 판단 안 돼 '혐의 없음' 조치
정인양, 3차 조사 4점 미만 점수 받아
경찰과 아보전, 조치·책임 서로 미뤄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서구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세 번째 아동학대 의심 신고 당시 양부모와 함께 진행한 제3의 소아과 추가 검사에서, 정인이 상태가 단순 구내염이 아니라는 소견을 받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병원의 구내염 소견서를 근거로 긴급 분리조치하지 않았다는 그간의 해명과 어긋난다.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외면한 것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6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해 9월23일 신고한 소아과 전문의뿐 아니라 또다른 전문의로부터도 "입 안 상처로 음식물 섭취가 어려울 수 있으나, 이로 인해 체중이 800g~1㎏까지 빠지기는 어렵다”는 소견을 받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인이 병원 진료에 동행했으며, 애초 긴급 격리를 고려했다. '지속적 아동학대 의심상황 발생으로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닷새 후인 28일 '아동 입 안 질병이 양부모 학대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아동학대 혐의 없음(일반 사례)으로 판단했다'고 결론을 뒤집었다. 두 명의 전문의가 정인이 상태가 구내염으로 인한 게 아니라는 소견을 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 경찰 수사도 '양부모가 적극 협조한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 탓에 중단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긴급 분리 조치 필요성 판단의 근거로 삼는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를 살펴보면 더 큰 의문이 남는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스스로 판단한 '결정조항'부터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조항은 한 개라도 해당할 경우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3차 조사에서 '즉각 조치가 필요'에 체크 됐음에도 분리가 아닌 방문 면담으로 조치 방식을 대체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결정조항은 '36개월 미만(비학대 보호자 부재)' 항목이다. 만 3세 미만 아동에게 안전한 보호자가 없을 때 표시해야 하는데, 정인이 사건에 해당하는 항목이라는 것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알고 있었다. 정인이를 상대로 이뤄진 세 번의 조사 내내,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자(비학대 행위자)가 없다'는 세부 문항에 '예'라고 체크해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결정조항에는 아무런 체크가 없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부실하게 조사하며 놓친 결정적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3차 조사 때 정인이의 체중이 1㎏ 가까이 빠졌는데도, ‘방임을 포함한 학대로 초래된 발육 부진이나 영양 실조 혹은 비위생 상태가 관찰된다’는 항목에 ‘아니오’라고 체크한 것도 확인됐다. 통상 9가지 평가문항에서 4점이 넘어야 아동에 대한 긴급 분리 조치를 고려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정인이는 3점에 그쳤고 결국 ‘학대 없음’ 판정을 받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정인이 분리 조치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정인이 사건' 재조사 자료에 따르면 두 기관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다. 서울청 점검단은 "경찰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분리 조치 시 수사가 진행되기에 경찰 의견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보호전담기관의 대처가 상식을 벗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의심 신고가 세 번이나 왔고, 특히 3세 미만 아동에 대해 신고가 들어왔다면 무조건 응급 상황"이라며 "조치가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