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몽니’는 임기 막판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100년 넘은 환경법마저 그의 손에 뒤틀렸다. 철새 죽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덜어주기로 한 것이다. 법이 바뀌면 수십억마리의 새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계속된 환경규제 완화를 두고 “기업을 위한 이별 선물(뉴욕타임스ㆍNYT)”이란 혹평까지 나올 정도다.
5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미 연방 어류ㆍ야생동물 관리국(FWS)은 이날 1918년 제정된 ‘철새조약법’ 일부를 개정했다. 핵심은 그간 기름 유출이나 전선 감전, 산업 구조물과의 충돌로 철새가 죽을 경우 해당 기업에 부과하는 제재나 벌금을 면책하기로 한 것이다. 데이비드 번하트 미 내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의도치 않게 철새를 죽였다는 이유로 지주나 기업 등을 기소하지 않겠다”면서 “철새조약법의 본래 의미를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철새조약법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철새 사냥이나 포획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02년 역사를 자랑할 만큼 법령에서 다루는 조류도 1,000종에 달해 환경보호의 핵심 정책으로 평가 받아왔다. 2013년엔 미 에너지 전문회사 ‘듀크에너지’가 풍력발전소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 철새 149마리의 떼죽음을 유발한 혐의로 100만달러(약 10억8,000만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즉각 “끔찍하다”며 개정안을 강하게 성토했다. 미 생물다양성센터의 멸종위기종 관리자 노아 그린왈드는 “석유회사들을 비롯한 여러 오염원들에게 철새를 죽여도 된다는 면허증을 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비난했다. 일부 단체는 소송도 불사할 방침이다. 사실 FWS조차 규제 완화로 철새의 희생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점은 인정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FWS 측은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총 72억마리 철새 중 산업이나 기타 인간 활동으로 연간 4억6,000만마리에서 최대 14억마리가 숨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반(反)환경’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를 규정하는 중요 키워드 중 하나다. 2017년 취임한지 얼마 안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전격 탈퇴한 게 신호탄이었다. 최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받은 경제 충격을 상쇄한다는 명목으로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법안 제정과 행정명령을 잇따라 강행했다. 지난해 3월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대폭 완화했고, 6월에는 환경영향평가를 축소해 고속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공사 기간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NYT는 “트럼프는 재임 기간 99개의 환경 관련 법률과 규제를 철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반환경 행보에 파리협약 복귀를 취임 첫 정책 행보로 정할 만큼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바이든 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이번 법 개정은 환경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가차없는 공격”이라며 “환경보호 조치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