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속옷·밑반찬 챙기는 게 '임신 말기 매뉴얼'이라니...

입력
2021.01.06 10:30
서울시 임신 정보 사이트에 알아야 할 정보로 실려
성 차별 비난 여론 일자 해당 내용 삭제
"공공기관 시대착오적 인식 되풀이"

서울시가 임신 정보 사이트에 남편 속옷 챙기기 등을 임신 말기 여성이 알아야 할 정보로 게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홈페이지 글은 뒤늦게 삭제됐지만 서울시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도마에 오르면서 논란이 된 글 작성자를 징계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2019년 개설해 운영 중인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에 게시된 내용 중 임신말기 행동 요령을 안내하는 부분에 '밑반찬 챙기기', '옷 챙기기' 등의 내용이 최근까지 포함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밑반찬 챙기기'에는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을 서너 가지 준비해 둡니다. 즉석 카레, 자장, 국 등의 인스턴트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요리에 서투른 남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됐다.

'옷 챙기기'는 "3일 혹은 7일 정도의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을 준비해 서랍에 잘 정리해 둡니다"라는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해당 사이트는 서울시가 흩어진 임신·출산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민원까지 처리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취지로 2019년 6월 개설했다.

실제로 임신한 여성과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지만 문제가 된 부분으로 인해 서울시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서울시는 논란이 일자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이 퍼지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 담당자와 책임자의 징계와 공개 사과를 요구한다'는 청원이 새로 올라왔다.

아울러 정부 부처를 포함해 공공기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드러낸 이전 사례까지 다시 언급되며 달라지지 않는 정부의 성차별적 기준에 대한 여론의 질타도 거세다.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는 '신혼부부 가구'를 정의한 문구에 성차별적 표현을 담아 논란이 되자 하루 만에 수정했다.

신혼부부를 '혼인한 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로 정의해, '남성과 달리 여성은 가임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만 신혼부부로 인정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가 지방자치단체별 가임기 여성 인구 수를 지도에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가 '여성을 출산 도구 취급했다'는 비판이 일자 해당 내용을 하루 만에 삭제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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