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비용 주고 한국 선박 석방 '빅딜' 하나...협상팀 이란 보낸다

입력
2021.01.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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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 백신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은행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 대금 일부를 송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오는 10일 이란을 방문해 직접 협의에 나선다. 이미 예정됐던 일정이지만, 이란 혁명수비대(IGRC)의 한국 선박 나포 사건과 맞물리면서 이를 고리로 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 1차관은 10일 2박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반장으로 한 실무 대표단도 이란 측과의 사전 협의를 위해 이르면 6일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구매비' 명목으로 동결 자금 송금..."미국 특별승인"


양국은 이번 협의에서 국내 은행에 묶인 이란 측 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복원으로 한국 내 이란 정부 계좌도 동결됐다. 규모는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묶인 70억달러(7조6,000억원)와 한국은행에 예치된 자금 등을 합쳐 최대 90억달러(약 10조8,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미국의 제재 탓에 묶인 자금 중 일부를 '백신 구매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이란과 협의 중이었다. 그리고 국제 백신 공동구매 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간접 지급 계획까지 수립해 둔 상태였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미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았다"면서 "이란 측은 (원화를) 달러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미 정부가 혹시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최종)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90억달러가 넘는 동결 자금 중 얼마나 이란에 지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백신 구입 비용이 급한 만큼 이중 10~20%라도 먼저 송금하는 방안이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란과의 협의는 물론 미 재무부와 추가 협의도 필요하다"면서 "실질적인 비용 지급은 (이달 20일)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선박 나포는 혁명수비대 단독 행동?


이런 상황에서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면서, 그 배경을 한국 내 자금 동결 문제와 연결 짓는 관측이 제기된다. 당장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이날 "이란 자금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 경우 최 1차관의 이란 방문은 자금 동결 문제와 함께 한국케미호와 선원 석방을 위한 교섭 성격을 띠게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이란 정부는 최 1차관이 곧 이란을 방문할 것이란 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이번 나포 사건이 이란 정부와 혁명수비대 간 교감 하에 이뤄진 게 아닐 수도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 정부가 혁명수비대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말했다.

다만 나포 문제가 자금 동결 문제와 연결될 경우, 이를 둘러싼 적절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이란과 긴장이 고조돼 있는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인 교수는 "이번 나포 사건은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사망 1주기를 맞아 대미 공세를 강화하려는 혁명군수비대의 단독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미국과 이란 관계의 불똥이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튀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들여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고, 한국케미호와 선원들에 대한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구했다.이에 샤베스타리 대사는 "(한국케미호 해양오염 혐의가) 완전히 기술적인 문제"라면서 "(선원들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조영빈 기자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