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시대

입력
2021.01.0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의 고스펙에서 찾는 국책 연구기관의 한 연구원 보고서가 논란을 부른 적이 있었다. 주로 고학력·고소득의 여성이 결혼에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한 이 보고서는 이런 여성이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고용시장이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조장하므로 이를 "채용에 불리한 요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으로 비난받았다.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할 때 성평등 관점을 고려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지적이 나올 만했다.

□해법은 황당하지만 사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저출산 원인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저출산은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기 부족한 환경, 제도 탓도 있지만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데다 피임이 수월해진 게 결정적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저출산이 이처럼 권장할 만한 사회 현상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면 이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선진국이 너나 없이 저출산 대책을 시행 중이지만 딱 꼬집을 성공 모델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생 인구가 사망 인구를 따라가지 못하면 인구는 감소하기 마련이다. 2019년 기준 세계은행 자료로는 이미 인구가 줄고 있는 나라가 25개국에 이른다.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이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에서는 세계 인구가 2064년 97억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해 금세기 말 88억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논문이 나왔다. 이 논문에서 금세기말 인구가 지금의 절반 이상으로 감소할 23개 나라를 꼽았는데 한국도 포함된다. 그 시작이 2020년이다.

□저출산도 마찬가지지만 인구 감소를 재앙으로만 여길 이유는 없다. 지나온 100년 동안이 인류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인구 폭발의 시대였다면 오히려 인구가 줄어서 얻을 이득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인구 감소가 10년 사이 반토막식의 급속한 변화가 아닌 것은 다행이다. 거스를 수 없는 추세에 맞춰 사회 구조와 제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