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용병 안철수'의 덫에 걸린 野...대선까지 꼬일라

입력
2021.01.06 10:00


새해 초 '안철수 바람'이 거세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여야 예비후보들 중 선두를 차지했다. 다른 주자들이 이리저리 재는 동안 발빠르게 출마를 선언해 주도권을 선점한 점, 다음 대선 대신 서울시장 선거 출마라는 깜짝 선택을 한 점이 '안철수'라는 이름을 순식간에 다시 띄웠다.

'반(反) 문재인'을 앞세운 안 대표는 보수 진영 주자를 자처한다. 인물난에 시달리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똘똘한 용병'의 등장이지만,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후보'로 보선을 이겨야 하는 당 지도부 입장에선 눈엣가시다. 그렇다고 보수 야권 단일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안 대표를 무시할 순 없다. '철수 정치' 전력이 있는 안 대표를 마냥 믿을 수도 없다.

안 대표는 '당 경선이 아닌 국민 경선으로 국민이 원하는 후보를 뽑자'며 본인에게 유리한 후보 단일화 방식을 이미 제시했다. '국민이 원하는 후보'라는 마법의 단어 앞에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커지는 단일화 요구… '개혁 이슈' 선점한 안철수

안 대표의 '보수 야권 단일화' 메시지는 일단 통했다. 보선을 약 석 달 앞두고 서울시민과 중도층을 중심으로 ‘야권이 후보 단일화로 정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의 신년 여론조사(지난달 28~30일 실시)에 따르면,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찬성 응답은 63.9%, 반대(28.2%)를 월등히 앞섰다. 보선의 승패를 좌우할 서울시민(64.6%)과 중도층(65.9%)이 단일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5일 "정권 말 야권 단일화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건 유권자들이 선거 레이스에서 '개혁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뜻”이라며 "안 대표가 이슈를 선점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해도, 안 해도 국민의힘은 '손해'

국민의힘은 겉으로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후보 단일화는 최종적으로 우리 목표에 따라 하는 것이고, 국민의힘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만드는 게 책무”라고 말했다. ①국민의힘 자체 후보를 띄워 보선을 이길 방법을 찾되, ②끝내 안 대표에게 지지율이 밀리면 '차선책'으로 단일화를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①이 실현되는 조건부터 까다롭다. 국민의힘 주자가 나타나 안 대표의 지지율을 꺾어야 하고, 안 대표가 단일화 결과에 승복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안 대표가 완주를 고집해 '3자 구도'가 되면 보수 진영은 필패다. 패배 책임은 안 대표보단 국민의힘이 더 많이 지게 될 것이다.

국민의힘 주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당내 경선 →안 대표와 단일화 경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본선'을 차례로 치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 등 대선주자 급의 예비후보들은 3단계 관문 중 한 곳에서라도 실패하면 치명상을 입게 된다.


안철수가 '대선 판'까지 흔든다

안 대표는 국민의힘 대선 전략의 중대 변수로 등장했다. 서울시장 보선은 내년 3월 대선으로 가는 대형 관문이다. 서울시장을 차지하는 세력이 대권까지 차지할 공산이 크다.

보선이 끝내 '3자 구도'가 돼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은 국민의힘에 최악의 시나리오다.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을 거치며 형성된 국민의힘 상승세가 순식간에 꺾일 것이다. 민주당이 착착 대선 준비를 하는 동안, 국민의힘은 보선 패배 책임론에 휩싸여 또 다시 늪에 빠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상황을 수습할 리더십이 없는 것도 문제다.

안 대표가 보수 단일 후보로 서울시장이 돼도 국민의힘은 활짝 웃을 수 없다. 안 대표가 '차기 보수 대선주자'로 훌쩍 뛰어오르면서 보수 표심은 안 대표에게 쏠릴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안 대표가 보선이서 이기면 국민의힘 외곽에서 야권 연대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윤석열 검찰총장 등이 모이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의 원심력 속에 국민의힘은 존립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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