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를 위해 한국에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자금을 사용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결자금 해제 요구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란군의 한국선박 나포 시기와 맞물려 원유대금 반환을 위한 수순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호세인 탄하이 이란ㆍ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현지시간) 이란 ILNA통신 인터뷰에서 “전날 에샤크 자한기리 수석 부통령과 만나 한국에 동결된 자금 사용 방안을 논의했다”며 “코로나19 백신 등을 사는데 이 자금을 소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아직 이 거래나 동결자금 해제에 대한 실질적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면서도 “양국이 동결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탄하이 회장은 이란이 수입할 코로나19 백신이 한국에서 생산될 백신인지, 유럽이나 중국산 백신을 이란이 수입하고 한국의 금융기관이 동결 자금으로 이 수입 대금을 대신 치르는 방식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우리 정부와 실제 조율 중인 사안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선박 나포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일 “지금 섣불리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하고 우리 선원 안전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2010년 한국과 이란은 미국 행정부의 승인 아래 이란과 직접 외화를 거래하지 않으면서 물품 교역을 할 수 있는 상계 방식의 원화 결제 계좌를 운용해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 핵합의를 탈퇴하고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해당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다. 현재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엔 이란 원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7조6,000억원)가 동결돼 있다.
이후 이란 정부는 동결 자금 해제를 꾸준히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양국이 동결 자금을 둘러싸고 접촉을 이어왔던 만큼 탄하이 회장의 이번 언급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4일 한국인 선원 5명 등이 타고 있던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면서 일각에선 이 사건이 동결 자금 해제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은행들에 동결된 이란 자금 문제로 이란과 한국 사이 긴장이 있는 상태에서 이란이 한국 국적을 나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탄하이 회장의 발언이 선박 억류에 앞서 나온데다, 정부가 아닌 민간 경제단체 차원의 제안인 만큼 백신 구매 자금과 이번 선박 억류를 직접 연결시키기엔 무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