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틈타 약값 '꼼수 인상'한 美 제약사들

입력
2021.01.06 05:30
코로나19로 줄어든 수익 보완 방안

미국 제약사들이 줄줄이 약값을 올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코로나19 치료제가 아닌 다른 의약품의 수익이 줄어든 만큼 가격 인상으로 손실을 보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미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상황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제 배 불리기만 나선다는 비판도 비등하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헬스케어 컨설팅업체 ‘46브루클린’ 분석을 인용,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 앱비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품 가격 인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지난 1일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 GSK, 사노피가 새해 벽두부터 가격 인상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가격이 오른 약품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부터 유방암 치료제, 종합백신, 항염증제 등 500여개에 달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통상 연말연초에 약값 인상에 나선다. 올해 약품 가격 인상률은 평균 4.8%로 작년(5.0%) 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가격이 오른 약품의 숫자는 지난해보다 50%나 늘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사들의 가격 인상 행렬은 지난해 내내 계속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제약사의 수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대면으로 진료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약 처방 판매가 현저히 떨어져 이로 인해 생긴 손해를 보완하기 위해 제약사들이 약값을 올린다는 것이다. 에이미 로즈 화이자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약값 인상은) 신약을 개발하고 환자들을 지원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약값 인하 추진 방침에 따른 풍선효과란 해석도 나온다. 의료조사기관 ‘스리액시스 어드바이저스’는 로이터에 “약값 인상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약값 인하 행정명령 추진으로 입은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약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며 지난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의약품 가격 인하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약업계는 그간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표명해왔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약값 올리기에 나선 것이란 의미다.

이 같은 제약사들의 ‘꼼수 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미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상황에서 부담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인이 1년에 약값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1인당 평균 1,200달러에 달한다. 비평가들은 “기업들이 약물 개발 비용을 과장한다”며 제약업계의 막대한 이윤 추구를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개발한 ‘길리어드사이언스’처럼 일부 제약사의 경우 지난해 실적이 올랐는데도 약값 인상에 동참하면서 제약사들의 ‘배불리기’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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