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근무하는 경비노동자, 주문하면 현관 앞까지 척척 갖다 주는 택배노동자, 새벽부터 곳곳을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 매일 마주하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숨은 노동자들이 스러지고 있다. 입주민 갑질에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늦을 거야'란 말을 남기고 운전석에서 숨을 거뒀고, 창문도 없는 한 평 휴게실에서 극한 외로움 속에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이 사회문제로 떠오를 때마다 정부와 국회, 기업들은 경쟁하듯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갑질과 과로, 열악한 처우에 여전히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택배, 경비, 청소노동자의 실태를 심층취재해 차례로 조명한다. 지난해 성탄절을 사흘 앞두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택배기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작년 12월 22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배송을 하던 한진택배 기사 김중연(41·가명)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이 없다. 동생 김미연(39·가명)씨에 따르면 오빠 김씨는 술과 담배를 멀리 했고 지병도 없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건강했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의문을 풀기 위해 오빠 휴대폰을 확인하던 동생 김씨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김중연씨 휴대폰에는 자정을 넘어 새벽 늦은 시간까지 고객에게 보낸 '배송완료' 메시지가 가득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11~12월 김중연씨가 고객들에게 보낸 마지막 배송완료 문자시간을 토대로 두 달간 근무시간을 분석해보니 그는 거의 매일 하루 17시간 이상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휴일인 일요일과 택배 물량이 평소보다 적은 월요일을 제외하고도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평균 87시간씩 일했다. 지난해 노동시민단체 '일과건강'이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간 평균 노동시간(71.3시간)은 물론 산재보험법 과로사 인정기준인 '직전 3개월 주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64시간 이상 노동'을 훌쩍 넘는 수치다.
김씨는 화요일인 11월 10일 오전 4시51분에 퇴근한 뒤 그 주 내내 오전 1시8분, 오전 3시4분, 오전 2시21분, 오전 1시51분까지 물건을 배송했다. 11월 27일 출근해선 다음날 오전 6시1분에 배송을 끝냈고, 당일 곧바로 출근해 오후 11시54분까지 일했다. 이틀간 꼬박 40시간 동안 일한 셈이다. 12월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택배기사들은 보통 오전 7시에 터미널로 출근해 5~6시간 동안 분류작업(까대기)를 한 뒤 오후 1~2시부터 본업인 배송을 나간다. 김씨는 이 분류작업을 빼고도 하루 10시간 이상 배송에 매달렸다. 그는 성탄절 1주일 전인 12월 17일 오후 11시39분에 퇴근한 뒤 18일과 19일에는 모두 자정을 넘겼다. 12월 20일 오전 0시33분 고객에게 보낸 '한진택배입니다. 택배 배송 완료하고 갑니다'란 메시지가 그가 남긴 마지막 배송완료 문자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12월 22일 김씨는 배송구역 중 한 곳인 흑석시장 정육점에서 고기를 나르다 쓰러졌다. 한진은 지난해 10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으로 "11월 1일부터 오후 10시 심야배송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고, 정부 역시 "택배기사의 심야배송을 제한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지켜지지도 않았다. 김씨 사고에 대해 한진은 "기사가 회복되면 정확하게 경위를 파악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