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각 영업중단

입력
2021.01.0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하림각’은 서울 청와대 뒤편 세검정 방향 자하문로 도로변 인왕산 자락에 널찍이 자리잡은 중국음식점이다. 식당 건물동과 함께 주로 결혼식장으로 쓰이는 대형 컨벤션홀, 별관인 하림각 역사관 등이 함께 들어서 아담한 컨벤션센터처럼 조성됐다. 결혼식 하객을 포함해 동시에 최대 3,000명의 식사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대개 화교 셰프들이 장악한 국내 유명 중국음식점과 달리, 하림각은 경남 의령 출신의 토박이 중국집 주방장 남상해(83) 회장이 1987년 개업했다.

▦ 하림각이 유명해진 건 MBC TV ‘성공시대’를 통해 남 회장의 자수성가 스토리가 널리 알려진 게 계기다. 성공신화를 쓴 그 시대의 인물들이 대게 그렇듯, 남 회장도 6·25 전쟁 시기 10세 나이에 빈손으로 상경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면서 신문팔이, 구두닦이, 물장수를 전전하는 굶주림 속에서도 번 돈을 고향에 부쳤다고 한다. 처음 먹어 본 자장면이 너무 맛있어 주인에게 사정 끝에 중국집 배달원으로 시작해 어깨너머로 주방일을 배웠다.

▦ 쌀가게 배달원이었지만 장부정리까지 도맡았던 고 정주영 회장처럼 남 회장도 중국집 주인이 반할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그 덕에 20대 후반에 워커힐호텔 조리부장을 거쳐 독립했고, 1982년에 남산 중턱의 고급 중국집 ‘다리원’을 일군 후 마침내 부지를 매입해 하림각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하림각은 성공신화에만 기대 허명을 얻은 음식점이 결코 아니다.

▦ 하림각은 기본인 자장면과 짬뽕에서 탁월한 맛의 경지를 일궜고, 탕수육에서 전가복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요리에서 화교 셰프의 맛을 능가했다. 화려하진 않아도 룸이든 홀이든 널찍하고 은근한 품격을 갖췄고, 직원들은 민첩하고 친절했다. IMF 땐 어려움을 나누겠다며 수 개월간 자장면 짬뽕 값을 대폭 할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통과 원칙을 일궈 온 하림각이 지난해 말 끝내 영업중단에 들어갔다. 다른 사정도 있겠지만 코로나19 탓이 클 것이다. 좋은 음식점은 오랜 친구와 같다. 위기에 빠진 다른 좋은 음식점들과 함께 새해 하림각의 힘찬 부활을 소망한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