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해를 단 하루 앞둔 31일 청와대 핵심 포스트를 교체했다. 신임 비서실장에 'LG맨' 출신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민정수석에는 ‘재수회(문 대통령의 대선 재수를 준비한 모임)' 멤버인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발탁했다.
전날 법무부ㆍ환경부 장관을 교체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지명한 데 이어 이틀 연속 몰아친 인사다. 해를 넘긴 직후엔 일부 경제부처를 포함한 내각의 중폭 인사도 예고돼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문으로 흔들린 리더십을 다잡고, 남은 임기를 '힘 있게' 정리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지막 비서실장은 정권 말 리스크를 관리하고 퇴임 후 대통령을 보좌하는 중책을 맡는다. 흔히 ‘충복형’이 선택되게 마련이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닌 경제전문가를 인선했다. 민생ㆍ경제에 성과를 내는 데 적합한 '관리형 비서실 체제'를 꾸린 것이다.
유 실장은 LG전자 최고정보책임자(CIO), LGCNS 부사장,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 등을 지낸 정보통신(IT)·경제 전문가다. 2016년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20대, 21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17년부터 2년간 문재인정부 과기부 장관을 맡았다.
실물경제에 밝고 추진력이 남다른 점을 문 대통령이 눈여겨봤다는 후문이다. 장관 시절 정보통신 분야 규제개혁,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등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신임 비서실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산업, 경제, 과학계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강한 추진력으로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선도했다”고 평했다. 1951년 부산 태생으로, 문 대통령보다 2살 많다.
김상조 정책실장의 사의는 반려됐다. 문 대통령은 “3차 재난지원금 지급, 코로나19 방역 등 현안이 많아 교체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고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여론에 떠밀려 정책 콘트롤타워를 바꾸기 보다 성과가 날 때까지 경제·부동산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다.
권력기관 개편과 검찰개혁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엔 검찰 출신인 신현수 전 실장이 인선됐다. 검찰과 거리를 둔다며 민정수석에 비(非)검찰 출신을 쓴다는 정권 방침이 깨졌다. 학자 혹은 감사원 출신 민정수석이 조국 사태와 추·윤 사태를 보다 보다 날카롭게 돌파하지 못했다고 문 대통령이 진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 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함께 사정비서관으로 일했다. 2012년 노영민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이 꾸린 ‘재수회’에 합류할 정도로 문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다. 친문재인계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을 지키며 공수처 출범 등 ‘검찰개혁 시즌2’를 뒷받침하고, 정권 말 문 대통령을 조준한 각종 의혹 공세를 방어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1월 초 5개 안팎 부처의 개각을 추가 단행한 뒤 신년 기자회견에 나서 국정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문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국무위원 중 일부를 바꿔 깜짝 쇄신 효과를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