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규정까지 고쳐 의대생 구제... 다시 불붙는 형평성 논란

입력
2020.12.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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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민간병원 인턴 선택권은 제한


지난 9월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전국 의과대학 본과 4년생 2,700여명이 내년 1월 시험을 치르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의료공백이 커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정부가 밝힌 이유다. 그러나 국민 여론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내세워 온 공정성과 형평성 원칙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뒤따를 전망이다.


"신규의사 2,700명 공백... 불가피한 결정"

보건복지부는 31일 "내년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상ㆍ하반기로 나눠 2회 실시하기로 하고, 상반기 시험은 1월 말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의사 국시 실기시험은 하반기(9월 이후)에만 치러져 왔는데, 내년엔 올해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험 기회를 한 차례 더 늘린 것이다. 복지부는 "당초 (내년 시험 예정) 인원 약 3,200명과 올해 응시취소자 2,700명을 합해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기시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 운영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국시 거부 의대생에 추가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데 대해 복지부는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9월 실기시험 미응시에 따라 신규 의사 2,700명의 공백이 생기고 공중보건의 약 38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실질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의대생 '구제'를 위해 정부는 규정까지 바꾸기로 했다. 내년 1월 실기시험을 위해 의료인력의 긴급한 충원이 필요한 경우 공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의료법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국시 실시 90일 전 공고를 해야 한다.

다만 올해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 대해선 진로 선택권을 올해 응시자와 차이를 두기로 했다. 올해 응시자 423명 중 합격한 365명(86.3%)은 내달 7~8일 필기시험을 치른 뒤 먼저 인턴이나 공보의 지원을 하게 된다. 올해 응시를 거부해 내년 1월 실기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그 이후에 지원할 수 있다. 올해 응시자들에 비해 지역이나 병원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역과 공공 분야의 인턴 전형을 넓히는 방안을 내년 시행할 예정"이라며 "2차적으로 지원하는 경우엔 수도권보다 지방, 민간병원보다 공공병원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선례... 버티면 이긴다 교훈 남겨"

앞서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은 지난 8월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ㆍ공공의대 신설 등 의료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며 국시 응시를 거부했다. 시험 일정을 늦추고 재접수 기간을 연장하는 등 응시를 독려했으나 의대생들은 스스로 시험 거부를 선택했다. 그러자 정부는 "다른 국가고시와의 형평성·공정성 문제가 있어 국민적 공감대 없이 추가 기회를 부여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날로 악화하며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하자 지난 2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의대생 국시 재시험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기일 실장은 이날 "코로나 상황을 최대한 극복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라며 "앞으로 단체로 시험을 거부할 때는 결코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스스로도 이번 조치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의대생 구제로 정부가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통상 국시 합격자 중 공공병원에 배정되는 인력은 5%도 안되는데,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국시 응시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명분도 없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방침을 바꾼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 지 의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위원장은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의료계가 반대한 것이 이 사안의 핵심인데, 정부가 시험 볼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을 부각시키다 늪에 빠진 꼴"이라며 "결국 의사들에게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교훈'만 남겼다"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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