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쥔제(趙俊杰) 중국 사회과학원 유럽연구소 연구원은 중국과 유럽연합(EU)이 30일 체결한 ‘포괄적 투자협정(CAI)’을 이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경제 성과는 한낱 포장일 뿐이다. 중국은 EU에 시장 접근을 보장하는 대신 동맹인 미국과 EU의 틈새를 벌렸다. 이에 블룸버그는 “EU가 출범을 앞둔 조 바이든 정부를 모욕하고 대서양 동맹에 타격을 입힌 큰 실수”라고 혹평했다.
이번 협정에 유독 ‘포괄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건 기존과 규율의 강도와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은 EU 27개 회원국과 26개의 상호투자협정(BIT)을 맺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시장에 진출한 EU 업체의 투자를 보장했다.
반면 CAI는 외국 투자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이전부터 ‘내국민대우’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기장 트랙의 규칙뿐만 아니라 출발선 자체가 중국 기업과 같아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고 EU가 줄곧 요구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강제 기술이전 금지 △국영기업 보조금 지급 투명화 △외국인 투자자 차별 금지 등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조달시장을 개방하고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면서 중국 업체와 합작해야 하는 조건은 폐지된다. 로이터통신은 “EU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이 금융을 넘어 전기차, 바이오, 부동산, 의료, 운송 등 폭넓은 분야로 전례 없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EU의 최대 교역 상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이 올해 미국을 처음 제쳤다. 지난해 EU의 대중국 수출 규모는 1,980억유로(약 265조원), 수입은 3,620억유로(약 484조원)에 달한다. 이처럼 압도적인 무역 의존도를 바탕으로 투자의 장벽을 걷어내면 EU가 중국을 공략할 기회 또한 늘어난다. “협정만 놓고 보면 EU와 달리 중국은 딱히 이득을 챙긴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수확을 얻었다. EU는 지난해 중국을 ‘체제 경쟁자’로 규정하며 적대감을 드러냈지만, 협정을 통해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이면서 중국은 한결 부담을 덜었다.
특히 중국은 지난달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을 포함한 14개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데 이어 EU와도 손잡았다. 미국의 압박에 맞선 거대 진용을 구축한 셈이다. 중국의 교역 파트너 1위는 아세안, 2위는 EU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31일 “EU와 이념과 정치의 차이를 극복하고, 민감한 분야의 이견을 해소하고, 미국의 은밀한 방해를 물리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협정이 시행되려면 수개월에서 1년은 족히 걸릴 전망이다. EU 의회와 각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주 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해 EU,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협정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EU 의장국이 중국과 관계가 밀접한 독일에서 내년 포르투갈로 바뀌는 것도 변수다.
협상은 2013년부터 7년간 35차례나 지속됐다. 중국은 2020년 타결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에서도 한발 물러섰다. AP통신은 “신장위구르 강제노동 문제와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 규정 준수를 약속하면서 입장 차를 좁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EU는 지난 10일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을 통과시켜 중국의 인권 유린을 직접 제재할 근거를 마련한 터라 양측의 갈등 소지는 남아있다.
중국은 한껏 자신감을 드러냈다. 가오펑(高峰) 상무부 대변인은 협정 체결에 대한 질문에 “미국의 반응은 미국 정부에게 물어보라”며 양국 무역관계가 조속히 정상궤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