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는 '노후 해법'... 주택연금 해지는 왜 늘었을까

입력
2021.01.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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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도 없는 2030, 집만 있는 6070
집값 올라도 가입당시 시가 기준에 수령액 적어
대출에서 차감되는 높은 보증료도 걸림돌

편집자주

2030·6070세대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청년·노년을 사는 첫 세대다. 일자리·주거·복지에서 소외를 겪으면서도 ‘싸가지’와 ‘꼰대’라는 지적만 받을 뿐, 주류인 4050세대에 치여 주변부로 내밀린다. 세대간 공정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외침이다.

"정부가 평생 연금과 거주를 보장하는 주택연금이 있습니다."(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 광고 문구)

자산(주택)만 있으면서 소득은 거의 없는 노년층을 위해, 정부가 들고 나온 해법은 주택연금이었다. 55세 이상 고령자(공시지가 9억원 이하 1주택자)가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매월 일정 액수를 받고, 가입자가 사망하면 금융기관이 주택을 처분하거나 상속자가 소유권을 이어받는 대신 대출금을 갚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제도다.

그러나 최근 고령층 사이에선 당장 돈이 부족하더라도 주택연금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들었던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반대로 신규 가입자 증가세는 감소하는 것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집계된 해지 건수는 1,975건으로, 2019년 1년간 총 해지건수(1,527건)를 훌쩍 넘어섰다. 고령 인구가 매년 증가함에도 신규 가입자가 1만명 정도로 정체된 것을 봐도, 노년층 입장에서 주택연금은 가입 전에 이것저것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노후 보장 수단이다.

고령자들의 주택연금 선호도가 낮아진 이유는 집값 상승세에 비해 연금 수령액이 낮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은 '가입 시점'의 시가로 책정된다. 가입 이후 아파트 가격의 하락·상승분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니 최근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연금 수령액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수도권 거주 노년층의 불만을 키웠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의 A부동산에서는 "작년 아파트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다 보니까 연금을 해지하고 집을 팔아서 시세차익을 보려는 분이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64)씨도 2년 전 주택연금을 신청했다가 바로 취소했다. 이씨에 따르면 그의 집은 당시 감정가 6억 5,000만원으로 매달 144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는 "계산해 보니 20년간 연금으로 3억 5,000만원을 받는 셈인데, 그 후엔 이미 내 집이 아니지 않느냐"며 "3억 5,000만원에 집을 잃느니 차라리 서울 근교로 이사 가 차익을 챙기는 게 낫겠다 싶어 취소했는데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주택금융공사 측은 “주택연금은 가입자가 사망하면 정산 후 남는 금액은 상속되기 때문에 집을 잃는 개념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고령층에게 높은 보증료 또한 주택연금 가입을 망설이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주택연금 가입 시에는 주택 가격의 1.5%에 달하는 초기보증료가, 연금을 받는 동안은 보증 잔액의 0.75%인 연보증료가 발생한다. 대출 잔액에서 가산되는 방식이라 당장 지출해야 하는 돈은 아니지만, 고령층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택연금을 고려하다 마음을 접었다는 남창숙(65)씨는 "해마다 보증료가 가산되니, 이건 연금이 아니라 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택연금이 소득은 없고 집만 있는 고령층을 위해 설계된 제도이니만큼, 제도 활성화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관점에서 가입 조건을 완화하고 혜택을 확대해 노인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연금을 민영화해 경쟁력이 있는 다양한 상품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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