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들

입력
2020.12.3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연말이면 언론ㆍ학계 등 지식인 사회는 한 해를 상징하는 어휘를 소개한다.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선정해 온 ‘올해의 사자성어’가 대표적이다. ‘한 해의 단어’ 선정은 외국에서도 세밑 연례행사다.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온 영국 옥스퍼드랭귀지는 일찌감치 2020년이 “전례 없는 한 해였다”며 “한 단어로 선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1년 사이에 전 세계 8,000만명이 넘는 확진자와 200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를 낳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단어들이 빠르게 명멸했기 때문이다. 특정 단어를 고르지 못한 사전 편찬자들의 고심이 느껴진다.

□미국의 온라인사전 딕셔너리 닷컴이 올해의 단어로 '팬데믹'을 꼽은 것은 자연스럽다. '팬데믹'과 경합한 단어는 ‘전례 없는’ ‘록다운’ ‘카오스’ ‘격리’ 였다. 주요 해외 언론들이 선정한 올해의 어휘에도 코로나 사태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올해의 단어를 복수로 선정해 기사로 소개했는데 각각 20개 중 16개, 10개 중 6개가 직간접적으로 코로나와 연관돼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원격수업’ ‘줌(비대면 회의)’은 물론이고 ‘감염재생산지수’ ‘확진자 추적’ 같은 감염학ㆍ보건학의 전문용어들이 올해의 어휘들로 선택됐다.

□ NYT와 FT 모두 ‘나쁜 상황에 대한 뉴스만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doomscrolling’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꼽은 점이 눈에 띈다. 코로나 시대의 우울한 정조, 재택 시간 증가에 따른 스마트폰 사용시간 확대 같은 세태를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켜고 확진자, 중환자용 병상, 사망자 정보 등을 중독적으로 확인한 뒤 희망과 절망,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기자협회보가 최근 올해 포털사이트에 노출된 한 뉴스통신사의 제목을 워드클라우드(많이 사용된 단어를 큰 글씨로 시각화하는 기법)로 분석한 결과 ‘코로나’‘확진’‘확진자’‘사망’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시대의 우울함이 짙게 풍긴다. 새해에는 감염병 종식, 경기 회복, 친밀감 증가 같은 희망의 단어들이 ‘올해의 단어’로 꼽히길 기대해 본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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