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삼킨 해다. 하지만 근 180만명을 죽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도 시위를 사그라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땔감을 대준 형국이다.
‘인권 동전’의 앞뒷면은 자유와 평등이다. 사실상 모든 시위의 테마일 그 둘은 길항한다. 자유는 차별을, 차별은 약자의 소외를, 소외는 그들의 저항을, 저항은 강자의 상실을, 상실은 그들의 증오를 낳는다. 그리고 증오는 다시 자유가 된다. 늘 평등은 아득히 멀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요원한 미래를 앞당겼다. 이 감염병을 만나 커지는 바람에 비로소 불평등이 선명하게 불거졌고, 새삼스레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ㆍBlack Lives Matter) 외치는 반(反)인종차별 시위가 미국에서 타올랐다. 국가 역사상 가장 컸다는 여름 무렵 그 항의 불길은 세계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시위 연료가 좌파에게만 제공된 건 아니다. 진보와 휴머니즘이 못마땅한 극우 민족주의자들한테 ‘방역 봉쇄’는 좋은 트집거리였다. 협조를 호소하는 정부에 ‘파시스트’(전체주의자)와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 “코로나는 독재 음모”라며 협공을 가하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46세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실직자였다. 2007년 휴스턴에서 무장강도 사건에 얽혀 5년 동안 복역한 그는 2014년 미네소타주(州)로 터를 옮겨 낮에는 트럭 운전사, 밤에는 식당 경비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닥쳤고, 일자리를 잃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데릭 쇼빈(44)의 무릎에 목이 눌려 죽어가며 남긴 말이다. 5월 25일, 위조된 20달러(약 2만2,000원) 지폐가 식당에서 쓰였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미니애폴리스 경찰들은 비무장 상태인 그를 넘어뜨려 8분 46초간 거칠게 진압했다. 휴대폰으로 촬영하던 행인들이 “목을 누르지 말라”고 성토했지만 쇼빈은 듣지 않았다.
당시 플로이드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였다. 감염병이 곤경에 빠뜨린 흑인의 전형이었다. 코로나19는 흑인에게 더 가혹하다. 미네소타주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 남짓인 흑인이지만, 확진자 비율은 29%까지 치솟는다(브루킹스연구소). 실업자를 양산한 대유행 전부터 흑인의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미 노동부 자료를 보면 2월 기준으로 아시아인이 2.5%, 백인이 3.1%인 데 비해 흑인은 5.8%에 달했다.
사실 미국은 ‘멜팅팟’(용광로)이 아니다. 미 경찰은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파일링에 인종주의가 내재한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미국의 인종주의를 구조적 문제로 본다. 강도로 오해될까 두려워 흑인들은 마스크 쓰기를 꺼린다. 흑인을 죽인 경찰이 제대로 처벌되는 일이 드물다. 워싱턴포스트는 “미니애폴리스의 폭력 사건은 미 경찰의 인종주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기 때 차별은 두드러진다. 약자에게 고통이 전가된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플로이드의 허망한 최후는 전근대적 인권 현실에 대한 지구촌의 경각심을 깨웠다. 당장 이튿날 미 전역에서 촉발된 시위는 세계 각지 연대 시위로 확산했다. 모든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서 분출했다. 독일 베를린 시위대는 미국을 극우 인종차별 테러 집단인 ‘KKK’에 빗대 ‘AMERIKKKA’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초심은 희미해지고 관성화한 일탈만 피곤해진 이들의 신경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특히 논란을 부른 행동이 위인 동상 파괴였다. 우파 백인들은 자랑스러운 정복 역사가 훼손되고 망각되는 게 싫었다. 500여년 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목을 자르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게 페인트를 뒤집어씌우는 짓은 과격한 ‘반달리즘’(기념물ㆍ예술품 파괴) 이상이 아니었다.
시위 초기 도널드 트럼프는 ‘인종주의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는 ‘법치주의자’로 변신해 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협하는 ‘급진 좌파 폭도’의 틀에 시위대를 가두면서다.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이 된 조 바이든 후보를 맹추격했다.
결과적으로 인종 평등 운동은 정권을 교체했다. 기여한 만큼의 지분을 흑인 사회는 요구했다. 내각이 먼저 멜팅팟이 돼야 했다. 90% 몰표를 바이든에게 안긴 흑인 여성이 대거 진입했다. 컨센서스(합의)의 진보도 일궈 냈다. 역사 청산 작업이 개시됐다.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군 사령관 로버트 리의 동상이 얼마 전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철거된 게 대표적이다. 개명(改名)도 일환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팀 클리블랜드의 구단주는 AP통신에 “이제 사회는 인디언스라는 이름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성취된 사회에서 평등을 가로막는 건 자유다. 인권의 적이 인권인 셈이다. 물론 불온(不穩)은 시위의 본질이다. 통치 권력에 맞서지 않고 쟁취된 인권은 없었다. 문제는 ‘위장된 불온’이 있다는 사실이다.
8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정부의 방역이 헌법상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독일 제국의 부흥’ 따위 파시즘 기치가 나부꼈다. 베를린시 사민당 상원의원 안드레아스 가이젤은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에 “집회ㆍ표현의 자유를 가장해 시스템을 경멸하는 게 시위대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