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입양아 정인양 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세 차례 경찰 신고가 있었지만, 서울 양천경찰서는 매번 다른 수사팀에 배당해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담팀에서 정인양 사건을 계속 맡았거나 각 수사팀이 신고내용을 적극 공유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정인양에게서 아동학대 징후가 보인다는 경찰 신고는 지난해 5~9월 세 차례 접수됐다. 5월 25일에는 어린이집 교사, 6월 29일에는 시민, 9월 23일에는 소아과 의사가 정인양 몸에 남은 상처와 영양상태 등을 이유로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 신고는 양천서 여성청소년과에 접수된 뒤 3개 수사팀이 각각 수사를 진행했다. 양천서 여성청소년과에는 4개 수사팀이 있는데, 신고 시점에 따라 3개 팀이 별개 사건처럼 대응했다는 것이다. 각 수사팀은 정인양 관련 신고에 대해 '아이 몸의 멍은 안마 때문이다' '아이를 차에 둔 것은 수면교육을 위해서였다' 등 양부모 측 주장을 토대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했다.
사건이 분산된 주요 이유는 아동학대 컨트롤타워인 학대예방경찰관(APO)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APO가 사안을 1차 판단해 각 수사팀과 내용을 공유하지만, 양천서에 배치된 2명의 APO는 세 차례 신고에 대해 신중한 검토 없이 매번 다른 팀에 사건을 맡겼다는 것이다. 신고 내용상 피해자가 중복되고 직접 진술을 하지 못하는 영아라는 점을 APO가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촘촘한 수사가 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경찰청은 1~3차 신고 담당자 중 3차 신고 사건을 처리한 경찰관 3명과 APO 2명 등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1차와 2차 사건 담당자에게는 주의와 경고 처분을 내렸다.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병원에서 정인양의 학대 증거를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한 점도 비극을 유발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세 번째 학대 신고를 접수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경우, 학대 위험도 평가 9개 문항 중 '외부 손상 관찰' 등 3개 문항에만 해당한다고 판단해 부모와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양부모의 단골 병원이었던 소아과도 찢어진 정인양의 입 안 상처를 보고도 구내염(염증)으로 소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세 번째 신고자였던 다른 소아과의 원장에 따르면, 양모의 학대는 두 번의 신고가 거듭 내사종결된 이후 더욱 극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소아과 원장은 "아이가 접종 등으로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10번 정도 왔는데, 마지막 내원일이자 신고 당일(9월 23일)에는 직전 내원일과 비교해 상태가 완전히 달랐다"며 "마지막 내원일인 7월에는 입에 상처가 있는 정도였지만, 9월엔 아이가 어린이집 관계자 품에서 축 늘어져 초점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고 당시 입 안 상처 등 과거력을 모두 경찰에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조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인양 사건에 대한 공분이 커지자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염두에 두고 사인을 원점에서 재검증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정인양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사안이 엄중한 만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법의학 전문가 3명에게 정인양의 사인 재감정을 요청했고, 새로 수집되는 정보를 종합해 혐의를 최종 판단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인양 가해 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현행법상 아동학대치사죄 형량 자체는 낮은 편은 아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에 따라 최고 징역 10년형을 권고하고 있다. 죄질이 좋지 않아 형량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특별조정'을 통해 최대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사건 실체에 부합하는 법적 처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