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중국이 줄곧 강조해온 건 ‘방역’의 우위다. 미국(1,900만명)의 누적 확진자는 중국(8만7,000명)의 200배가 넘는다. 하지만 서구의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자 중국은 “집단 면역에서 뒤쳐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감염률이 낮다고 안심하다가 국민들의 항체가 늦게 형성되면 변이 바이러스를 비롯한 코로나19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옌중(黃嚴忠) 미국외교협회 세계보건 선임연구원은 29일 “영국과 미국 등에서 집단 면역에 속도를 내기 위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며 “중국과 면역력 격차가 커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구의 60~70%가 백신을 맞아야 코로나19 확산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14억 인구의 중국은 최소 9억명 가량이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 면역이 형성되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감염률이 현저히 낮아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중국이 처한 ‘코로나 역설’이다. 코로나19가 최초 집단 발병한 후베이성 우한의 경우 전체 1,120만명 가운데 확진자는 5만345명으로 유병률이 0.45%에 불과하다.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올해 초 우한 주민 3만4,000명 대상 조사 결과 코로나 항체 형성률이 4.43%에 달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 이는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번도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아 항체가 없는 주민이 많은 만큼 변이하는 바이러스에 집단적으로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떠안은 것이다.
이에 중국은 백신 접종을 독려하며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저장성과 상하이, 쓰촨성에 이어 우한에서도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해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00위안(약 3만4,000원)짜리 중국산 백신을 맞기 위해 7만위안(약 1,190만원)을 들여 비행기표를 끊어 고국으로 돌아온 스위스 유학생의 사례를 소개하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중국 백신을 접종하는 건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은 코로나19 백신의 상당량을 해외로 수출해 글로벌 입지를 굳히려 하고 있어 국내 집단 면역을 갖추는데 오롯이 주력하기 어려운 처지다. 보건당국은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이 연초 ‘조건부’ 승인을 거쳐 내년 4월쯤 시장에 정식 출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