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맹주로 자리잡은 베트남이 2021년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 초 5년 주기로 열리는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전대)를 통해 국가 최고권력이 새롭게 구성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베트남의 특성상 공산당 권력구도 변화는 외교ㆍ경제정책의 유동성을 가늠할 척도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가 더 두드러질 2021년, 베트남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까.
공산당 권력이 절대적인 베트남의 대권 변화는 민주적 선거에 기반한 한국의 정치 절차와 매우 다르다. 베트남은 올 하반기 450만명의 전국 공산당원들이 하부조직인 각 지방성(省) 대의원들을 선출하면서 전대의 신호탄을 이미 쏘아 올렸다. 내년 1월 25일부터 2월 2일까지 진행될 제13차 전대에 참여할 1,510명의 대의원 명단은 대부분 채워졌다고 한다. 이들은 차기 전대에서 향후 5년 당의 주요사안을 결정할 중앙집행위원회(200명)를 꾸린다.
이후 중앙위는 다시 20명 안팎의 정치국원을 추려내고 이들 중 서열 1위가 당서기장 자리에 오른다. 보름 동안 치열한 논의 끝에 당서기장이 선출되면 권력서열 2위이자 한국의 대통령과 비슷한 역할을 맡는 국가주석, 국무총리(3위), 국회의장(4위)의 윤곽도 드러나게 된다. 당서기장이 2~4위에 대한 임명제안권을 갖고 있어 그의 결심에 따라 ‘빅4’의 라인업도 수시로 변하는 게 베트남 정치의 특징이다.
자연스레 최대 관심은 차기 당서기장이 누가 되느냐에 집중된다. 현지에선 “복잡한 상향식 절차 탓에 예측이 무의미하다”고 평하지만, 12차례의 전대 결과를 보면 당서기장 선임의 필요 조건 정도는 도출된다. 우선 과거 미군정이 지배한 남부 출신 혹은 여성이 당서기장이 된 전례가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중ㆍ북부 출신 남성에게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당 규정에 ‘정치국원 경험을 통해 지도력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기준이 적시돼 있어 최근 2년 사이 징계 경력이 있는 정치국원과 차차기 대권군을 제외할 경우 유력 후보는 4,5명으로 좁혀진다.
현지 정가에선 은퇴가 예상되는 응우옌푸쫑 현 당서기장이 밀고 있는 쩐꾸옥브엉 당 비서국 상임비서(북부 타이빈 출신)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주가를 높인 응우옌쑤언푹 현 총리(중부 꽝남) 역시 대항마로 거론된다. 아직 65세가 되지 않은 또럼 공안부장관(북부 흥우옌)이나 팜빈민 외교부장관(북부 남딘) 등 국가주석 후보군의 약진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베트남 관료사회는 “베트남은 행정 경험을 중시해 총리는 부총리 5명 가운데 뽑힐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국회의장은 안배 차원에서 여성이나 남부 출신 중용될 것이란 하마평도 나온다.
반면 특정 후보 낙점을 신뢰하지 않는 기류도 읽힌다. 한 소식통은 30일 “12차 전대 직전 푹 총리의 선임을 예측한 여론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13차 전대에서도 반전이 있을 것”이라며 “특히 격변하는 최근 국제정세를 놓고 대의원들 사이에서 ‘세대교체’와 ‘역(易)보수강화’ 분위기가 충돌하고 있어 전대 개막 전까진 대세론을 점치기가 어렵다”고 총평했다.
인물은 맞추기 어려워도 향후 5년간 베트남을 지배할 외교ㆍ경제의 기조는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근거는 현 공산당 지도부가 다음 전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 중인 ‘정치보고’ 초안이다. 지금껏 15차례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초안은 지난 5년 동안의 국가발전 성과와 이에 기반한 개선ㆍ발전 방향에 대한 총괄적 제언이 담겨 있다.
정치보고 초안에 따르면 13차 전대 이후 베트남 정치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ㆍ보수하는 쪽으로 큰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키워드는 ‘내부에서 순리에 따라 변화한다’는 뜻을 가진 ‘연변(演變)’이다. 여기서 변화의 대상은 공산당 주도의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1986년 6차 전대에서 선포된 ‘도이머이(경제쇄신)’ 정책의 최대 장애물로 지목된 공공영역의 부정부패다. 당의 지배는 유지하되 국민의 경제적 행복을 막는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겠다는 얘기다.
베트남 개혁ㆍ개방 연구 전문가인 이한우 서강대 교수는 “베트남은 경제발전을 이뤄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현 집권세력이 코로나19 이전 연평균 6~7%의 고속성장으로 ‘업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라 차기 정권도 부패척결을 통해 당 정비와 사회주의 의식 고취 작업을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제의 화두는 단연 ‘자강(自强)’이다. 베트남 경제는 도이머이 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발판 삼아 덩치를 키워왔다. 그러나 실상은 여전히 자국 수출량의 70% 가량을 삼성전자를 위시한 외국 공산품이 차지하고 있다. 수출 라벨은 ‘메이드 인 베트남’으로 찍히지만, 베트남이 제공한 건 노동력과 하급 기술에 불과해 본질적인 생산 역량은 미흡한 수준이다. 나머지 30%의 수출 물량도 대부분 농수산물이나 노동집약 단순 가공품이다.
이에 차기 지도부는 고부가가치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핀테크 등 정보기술(IT) 업체를 유치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최근 베트남은 하노이 인근에 IT 산업 연구단지를, 다낭 등 중부지역에 하이테크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하드웨어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자제품과 자동차 완제품의 기반이 되는 부품ㆍ소재 산업 육성도 핵심 목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자력으로 완성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1차 산업 생태계부터 현지 기업들로 채워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베트남 산업부 관계자는 “부처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한국 기업에 납품하는 로컬 하청업체의 자체 기술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베트남의 앞으로 5년은 독자적인 밸류 체인을 갖춘 신흥공업국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