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초고속인터넷 들어온 날 "딸이 팔짝 뛰었어요"

입력
2020.12.30 04:30
18면
초고속인터넷 보급 세계 1위지만 
농어촌마을 일부는 여전히 '불통'
정부, 2022년까지 1300여곳 초고속인터넷 구축

"인터넷 들어온 날 딸내미가 팔짝 뛰었어요."

서해 가로림만 한복판에 위치한 고파도. 충남 서산시 구도항에서 105톤 여객선 팔봉산호를 타고 45분 가량 파도를 헤치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이 섬에 초고속인터넷이 들어온 건 불과 두달 전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초고속인터넷 신청을 했지만 업체에서는 "기술적으로 설치가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 가구수가 적다 보니 인터넷 업체에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사회 전반이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있어 인터넷 속도는 이제 일종의 인프라가 됐다. 지역간 디지털 격차가 사회·교육·경제적 격차로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최근 정부가 나서 농어촌 마을에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해주는 이유다.

조상 대대로 고파도에서 나고 자라 올해로 13년 째 고파도리 이장직을 맡고 있는 김기종(55)씨는 "47가구 섬 주민 대부분이 그동안 접시안테나 딸린 위성방송으로만 TV를 봐서, 기상이 안좋으면 시청불가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며 "인터넷도 휴대폰의 데이터통신이 전부여서, 느린 속도에 무제한요금제로 불편과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섬에 하나밖에 없는 고파도 분교가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으면서 김씨의 막내 딸 아라(10)양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인터넷 환경 때문에 이 분교에서는 아직까지 온라인 강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초고속인터넷이 들어오면서 방구석 차지였던 스마트패드도 제 구실을 하게 됐다.

초고속인터넷 덕분에 과거 상상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졌다. 고파도 주민의 경제활동 대부분은 굴과 바지락 등을 채취해 파는 수산업이다. 선도가 생명인 어패류를 대전, 세종, 서울 등 대도시에 신속히 내다팔기 위해 전용 인터넷쇼핑 사이트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인터넷 환경이 개선된 만큼, 이를 보다 적극 활용한 각종 수익사업을 구상중"이라며 "마을공동체기업 설립 등을 지자체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내동산리마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발 750미터 산자락에 단 아홉 가구 중 가장 산꼭대기에 위치한 두 가구는 초고속인터넷이 닿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내동산리마을이 정부와 LG유플러스, 평창군청 등의 지원으로 군내 14개 초고속인터넷 구축 대상 마을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 두 가구가 혜택을 보게 됐다.

마을 꼭대기에서 산마늘과 장뇌삼 등 특수작물을 경작중인 전태하(58)씨는 "큰 돈이 든다고 해서 포기하며 살았는데, 월 3만6,000원에 유무선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IP) TV를 이용하고 있다"며 "미뤄뒀던 스마트팜과 온라인 택배 직거래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파도, 내동리산마을처럼 초고속인터넷이 연결된 마을이 올해에만 642개.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보기술(IT) 강국'이지만 여전히 벽지 농어촌이나 외딴 섬마을에서는 음영지역이 존재한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오는 2022년까지 총 1,324개 전국 농어촌 마을에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고화질 영상을 보는데 충분한 100Mbps급 초고속인터넷망 구축비로 육지 지역은 마을당 1,900만원, 도서지역은 5,000만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통신망 사업자 등 3자가 공동 펀드를 조성해 146억원을 마련했다.

NIA 관계자는 "전국 지자체를 통해 초고속인터넷 보급 수요 조사를 한 결과 예상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수요가 있어서 내부적으로도 놀랐다"며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시행되고 원격의료도 논의되는 만큼 지속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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