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부활한 김광석

입력
2020.12.29 04:30
30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귀신의 노래를 들은 걸까. 1996년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2002년 발표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른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들으면 고인이 살아 돌아와 이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요즘 TV를 켜면 김광석이 부르지 않은 김광석의 노래가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예고편을 타고 종종 흘러 나오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뿐만 아니다. 앞서 엠넷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에선 혼성그룹 거북이의 두 멤버가 2008년 숨진 ‘터틀맨’ 임성훈의 홀로그램 영상과 함께 공연했고, 1990년 사망한 가수 김현식은 인공지능(AI)으로 부활해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고인의 영상과 목소리를 다시 만난 유족이 하릴없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놀랍다’ ‘소름끼친다’ ‘감동적이다’는 흔한 반응에 ‘무섭다’ ‘걱정된다’는 노파심도 있었다. 20여년 전 등장했던 사이버가수 아담이 1회성 이벤트 수준이었다면, AI 가수는 언젠가 대중음악계 판도를 바꿔놓을지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었다.

당장 일본에서 오랜 기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하츠네 미쿠라는 ‘버추얼 가수’만 봐도 그렇다. 하츠네 미쿠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악기 제조 기업 야마하의 음성 합성 엔진 보컬로이드를 결합한 일종의 프로그램인데 사용자가 만든 악보 위의 노래를 AI가 부르는 노래로 바꿔준다. 무명 작곡가들이 하츠네 미쿠를 발판 삼아 발표한 노래가 잇따라 히트곡이 되면서 캐릭터이자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하츠네 미쿠는 아이돌 가수처럼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스타가 됐다.

음성 합성 프로그램에 유명 가수들의 목소리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인격권이나 저작권 문제만 없다면 자신이 만든 곡을 김광석의 목소리로 노래하도록 할 수 있고, 김현식의 목소리로 듣는 '강남스타일’도 가능할 것이다. 가수가 실제로 노래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만든 AI에 가창을 맡기는 것도 흔한 일이 될지 모른다.

AI 창작은 이미 문화ㆍ예술계 전반으로 침투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에서 머신러닝을 통해 직접 작곡하는 AI 소프트웨어가 나온 지도 벌써 5년 전이다. AI가 쓴 소설이 등장했고, AI가 쓴 시나리오로 단편영화가 제작됐다. 미국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지난해 ‘아이리시맨’에서 AI를 활용해 70대 노배우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의 얼굴을 50대로 바꿔놓았다.

AI는 이제 사람을 통째로 복제하는 수준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의 말투, 취향, 사고, 표정, 움직임, 습관 등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디지털 쌍둥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사진을 비롯한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밖에 없는 진품성의 신화를 해체했는데, 곧 사람의 진품성마저도 해체할 것만 같다. 진품와 복제품, 가짜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진다.

AI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이다. 혁신적이고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개인의 고유성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답은 결국 사용자들의 합의에 달려 있다.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말초적 소모에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AI를 사용하고, 어떻게 AI와 공존해야 할까. '우주의 원더키디' 배경이었던 2020년을 보내며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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