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법관 공격

입력
2020.12.28 18:00
30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력 대등 재판부’는 법조 경력 16년 이상인 판사 3인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재판장은 법대 중앙에 앉지만 이 재판부의 재판장은 중앙은 물론, 좌우에도 앉아 재판을 진행한다. 판사 3인이 재판장과 주심을 번갈아 맡기 때문이다. 재판부 명칭도 ‘서울고법 민사 12-1,2,3부’식으로 표기된다. 한 재판부 아래 또다른 3개 재판부가 있는 셈이다. 일반 재판부 좌우 배석 판사는 대체로 침묵하지만 이 재판부에선 재판장도 주심도 모두 적극적으로 심문에 임한다.

□경력 대등 재판부 운영의 핵심은 협의와 합의다. 일반 재판부에선 재판장이나 주심이 아니면 재판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재판부 판사들은 지위, 기수, 경력에서 큰 차이 없이 동등한 관계다 보니 사건 내용과 사실관계, 쟁점, 법리 등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일이 잦다. 판결문 작성법도 달라져 판사 3인의 충분한 논의와 검토 후 합의를 거친 뒤 작성한다. 합의부에서 ‘3자 합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경력 대등 재판부는 ‘평생법관제’ ‘법관 인사 이원화’의 결과지만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로 만들어진 사법개혁의 산물이기도 하다.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재판부 의사결정 구조를 법관의 독립성이 좀 더 보장되는 수평적 합의제로 바꿔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취지다. 이듬해 고법과 지법 항소부 등 2심 재판부부터 먼저 운영되기 시작했고, 올해 2월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가 1심 재판부로는 처음 경력 대등 재판부로 구성됐다.

□정 교수가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친문 의원들의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사법 개혁은 물론, 법관 탄핵까지 거론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총장직 복귀 결정까지 겹쳐 사법부에 대한 반발 강도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경력 20년 전후 판사 3인이 참여한 재판부의 탄생 과정이나 운영 특징을 알고는 있는지, 그들이 합의에 도달해 작성한 A4 용지 575쪽 분량의 판결문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긴 했는지 의문이다. ‘개혁’은 아무렇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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