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는 압도적이지 않은 헌신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걸 깨우치게 해준 한 해였다. 코로나19를 막아내는 데에 수고한 ‘올해의 인물’ 종류의 선정작업이 여러 곳에서 진행됐다. 포스코 청암재단은 7인의 간호사를 올해의 영웅으로, 김근태 재단은 간호사 모두를 대표해 대한간호사협회를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또 각 매체에서도 간호사, 의료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로 꼽아서 심층보도를 했다. 3차 유행기 아래서 간신히 방역선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 덕분에 그나마 이만큼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정은경 청장은 등장할 때부터 성실과 신뢰의 아이콘으로 꼽혔다. 일 년 내내 그 모습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시간만 빨아들여 흰머리가 늘고, 조금씩 초췌해져 갔다. 과로가 역력한 모습에 깁스 한 채로 코로나 전파 상황을 전하는 정 청장의 상이군인 같은 모습이야말로 2020년 우리 모두의 초상화였다. 정 청장은 위대하거나 탁월한 공로가 있어서 주목받은 게 아니다. ‘차분한 바이러스 헌터’로 불렸던 그는 결코 압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적이지 않아서 불안한 국민들이 한줄기 희망을 걸 수 있었다. 그는 차분했지만 따뜻했고 그의 무표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감에서 오는 절제로 읽혀졌다.
외신들도 정 청장의 리더십을 주목했다. BBC는 올해의 여성 100, 블룸버그는 올해의 50인, 타임지는 영향력 있는 100인에 각각 선정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코로나 방역의 진정한 영웅으로 이 차분한 리더를 조명했다. 여성운동단체에서도 정 청장을 올해의 여성지도자(한국YWCA)로 선정했다.
정 청장의 유명세 아래에는 수많은 의료진이 이름 없는 영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보조인력. 이들은 폭염과 혹한을 견디며 불편한 레벨D 방호복을 입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기꺼이 일상의 안전을 버리고,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확진자 중 의료진 비율도 적지 않았다.
간호사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호사는 대표적인 여성 집중 직업군이다. 환자에 대한 돌봄 영역을 책임지는 간호사들은 의료적 처치 이외에도 주변 관리까지 감당하며 일해야 했고, 의사들의 파업기간에도 이들은 더 쉴 수 없었다. 무례와 반칙, 인색한 처우를 견디는 것도, 간호사들의 몫이었다. 25일 게시판에 등장한 간호사의 처우 불균형에 관한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임시 파견직 간호사들의 대우가 숙식비까지 포함해 하루 약 40만원으로 정규 간호사들의 약 10배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인 올해를 세계최초로 간호사의 해로 정했다. WHO사무총장은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목표(SDGs) 중 보편적 건강 목표에서 ‘간호사의 헌신과 공헌을 인정하기 위해 2020년을 헌정한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인력부족과 열악한 처우를 간호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고, PA간호사의 제도화, 별도 간호법 제정 등을 현안과제로 밝혔다. 현재 41만5,000명이 간호사로 등록돼 있고 이중 절반에 못 미치는 22만명이 활동 중이란다. 간호사의 해 마지막인 오늘도 코로나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이 간호사의 노고에 공평하고 마땅한 보상이 돌아가는 새해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