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2020년이 어떤 해였는지 짧게 표현해보라는 이벤트를 가졌다. 1등으로 뽑힌 9세 소년은 이렇게 적었다. "양쪽을 잘 살피며 교차로를 건너고 있었는데 잠수함에 치인 것과 같은 한 해였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글이다.
길 가다 만난 잠수함 격인 코로나19를 우리는 그동안 잘 막아왔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확산세는 너무나 당황스럽다. K-방역의 성공담과 K-바이오의 꿈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미친 듯한 2020년을 과거로 보내버리기가 이리도 힘드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언론은 정부 대응의 실패담을 전하기에 몰두하고, 정부는 그에 대한 해명을 하느라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K-방역의 성공담을 나누던 정부와 언론의 허니문 기간은 진즉 끝났다. 정부가 언론에 대해 섭섭해 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는 언론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되새겨야 한다. 안보를 연구하는 까닭에 필자는 전쟁 상황에서의 미디어 행태를 종종 접한 바 있다. 사례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런 것이었다. 언론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시작한 전쟁도 6개월이 넘어가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언론과 정부의 짧은 밀월 기간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언론계에는 미디어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정서 때문에 정부 입장에 대한 초기의 긍정적인 보도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으로 변화한다.
정부는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에도 불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신속성을 중시하는 언론의 속성 때문이다. 전시에도 이런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걸프전 당시 '옥상 신드롬'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기자들이 바그다드 시내 건물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생방송으로 영상을 송출했다.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보도가 양산됐고, 옥상 신드롬은 이를 비판하는 신조어였다.
나라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도 언론의 이런 속성이 드러나는데, 현 상황에서 언론이 정부를 지원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어쨌든 바이러스는 확산되고 있고, 백신 접종은 선진국보다 늦어졌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지 말라. 언론을 잘 다독여 국민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안을 찾는 게 현명하다. 백신 관련 사과가 필요하다면 빨리 사과하고 사태 수습에 나설 일이다.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을 찾아봤다. 다 좋은데 소통 전략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천편일률적인 브리핑, 속도감 떨어지는 정보 전달로 국민이 인식하는 정부의 위기 대응 점수가 깎이고 있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정부 메시지와 대응의 사회심리적 수용성을 높이도록 조정하는 전문가들이 필요해 보인다. 위기 상황이 장기화되면 대중의 ‘피로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이를 관리하지 못하면 일 잘하고 비난받는 수가 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는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논란이 있었지만 백신은 충분히 확보되었고 접종 시기도 그리 늦어질 것 같지 않다고 한다. 국산 치료제 개발이 임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겨울을 잘 보내면 고난의 계곡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지금부터는 정부가 소통에 더욱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