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나 할까,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

입력
2020.12.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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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행정부에서는 내년 초 대통령에게 할 부처별 업무보고 준비가 한창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하는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투자자 앞에서 연설하듯이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기법이 동원된다. 그러나 세련된 시각적 효과, 유려한 언변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1년이 될 2021년,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뚜렷한 국정 방향을 보여줬으면 한다. 바로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이다.

정말이지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의 영업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청년들은 취업난으로 꽃도 피우기 전에 벌써 시들어간다. 국민의 가슴속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것에 모두의 눈과 귀가 쏠려 있지만, 그 이면에서 더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또 다른 위기상황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소득 하위 20% 그룹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감소 폭이 더 커지면서 소득 상위 20% 그룹과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전례 없는 위기에 각 나라 정부들이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산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만, 아마 우리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불평등이 더 커질까 두렵다.

그동안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과 같은 전통적인 불평등에 대한 담론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펼쳐 왔다.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다양해지는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과 역량도 달라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사회구조의 계급화와 능력주의 만연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성취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보고, 실패를 개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한다고 했을 때 공정성이 훼손된다고 반발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2030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경쟁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집 한 채 사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상승할 기회가 막힌 현실에 큰 좌절감을 느낀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성이 낮아지는 가운데 2030 세대들은 부모 세대보다 생애소득이 적은 첫 세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라는 사회의 보편적 인식 때문에 미래세대들의 좌절감과 패배감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두 가지 방향으로 고민과 실천이 동시에 필요하다. 정부는 우리사회에서 계급화가 공고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더불어 시민들은 공동체를 위한 연대의식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그러나 집권 마지막 1년에 불평등 문제를 다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를 준비하며 최소한 문재인 정부가 시작할 때 내걸었던 초심을 떠올리면 좋겠다. 기억이나 할까? ‘사람이 먼저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걸어본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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