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패배한 미국 공화당이 일부 주(州)에서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전통적 현장 투표 비중이 늘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우편 투표 같은 사전 투표 방식은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투표 방식이라면 적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당내에 없지 않다.
AP통신은 27일(현지시간) 이번 미 대선에서 역사적인 투표율을 기록하는 데 기여한 투표 방식이 계속 유지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며 이런 공화당 내 기류를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 27개 주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우편 투표를 확대하거나 규제를 완화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고육책 성격이었지만, 망외의 성과가 있었다. 1억명이 넘는 유권자가 사전 투표에 참여했고, 1900년 이후 가장 높은 최종 투표율(66.8%)을 기록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우편 투표 강화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다. 실제 대선 결과까지 나쁘게 나오자 그는 각 주 정부를 상대로 무효 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60여건의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했고, 연방대법원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불복 소송에 실효성이 없다고 봤는지 공화당이 아예 투표 방식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조지아주에서 브래드 래펜스퍼거 국무장관이 사전 투표 때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제출, 드롭박스(거리에 설치하는 투표용지 수거함) 금지, 우편투표 사유 제출 등 지금보다 엄격한 제도 개정안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대중 신뢰도를 높이고 향후 선거 사기를 주장할 수 없도록 하려는 취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슷한 움직임은 펜실베이니아주와 위스콘신주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각 주 선거 방식은 주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각 주 상·하원을 통과하고 주지사가 서명하면 선거법 개정안이 발효할 수 있다. 현재 조지아와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은 모두 공화당이 상·하원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주다.
이런 행보에 이른바 '공화당 주'가 전부 동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켄터키주와 미주리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거꾸로 유권자가 우편 투표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거나 사전 투표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클 아담스 켄터키주 국무장관은 "정당을 막론하고 이번 투표 방식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며 "투표 참여를 더 쉽게 만들었다"고 호평했다. 프랭크 라로즈 오하이오주 국무장관은 "입법의 최우선 순위는 사전 투표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현 투표 방식이 탐탁하지 않다는 게 공화당 주류 정서다. 뉴욕대 로스쿨의 웬디 와이저 브레넌센터 민주주의프로그램 부소장은 "우편 투표에 대한 장벽을 높이려는 공화당과 우편 투표를 더 쉽게 만들려는 민주당의 법률 제정 다툼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