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웃은 밤, 문 대통령 '검찰개혁' 열망 시들었다

입력
2020.12.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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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패배이자 문 대통령의 더 큰 패배"
정국 수습 무산, 레임덕 가속화 우려   
청와대 "입장 발표 없다" 서둘러 침묵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 크게 졌다.

법원 결정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총장직 즉각 복귀가 결정된 24일 밤. 당정청에겐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다. ‘윤석열 제거=검찰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내달린 결과는 더없이 참혹했다. 현직 검찰총장 징계라는 무리수를 사실상 추인한 문 대통령이 급격한 레임덕(정권 말 권력 누수)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법원 결정이 나오자 마자 청와대는 강민석 대변인 명의의 짧은 입장을 냈다. “법원 판단이 늦은 시간에 나왔습니다. 오늘 청와대 입장 발표는 없습니다.” 청와대가 서둘러 침묵을 선언한 것은 당혹감이 그 만큼 크고 깊다는 뜻이다.

윤 총장의 직무 배제와 징계를 강행한 것은 추 장관이었다. 직무 배제는 법원이 일찌감치 무효화했다. 남은 카드는 징계였다. 추 장관이 주도한 법무부 검사징계위는 지난 16일 총장직 2개월 정직을 결정했고, 문 대통령은 단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 약 14시간만에 징계안을 재가했다.

문 대통령의 빠른 재가는 윤 총장 징계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징계당한 윤 총장의 손발이 묶이고, 결국 검찰 조직의 힘이 빠지는 것이 당정청이 바란 시나리오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 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했다. 검찰총장 징계의 최종 책임을 검찰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시끄럽게 몰아친 지난 수 개월 동안, 문 대통령은 한 번도 추 장관을 공개 질책하지 않았다. 사이사이 ‘검찰개혁’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것은 오히려 추 장관에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됐다. 고비마다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열망이 그 만큼 크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

추 장관의 패배를 사실상 문 대통령의 패배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정청의 '윤석열 찍어내기' 집착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문 대통령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추미애ㆍ윤석열 갈등을 지켜 본 민심은 이미 ‘당정청의 잘못이 더 크다’는 판정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그저 가만히 있는데도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이 그 징후였다. 윤 총장이 다음 주 기세등등하게 출근하면, 당정청의 기세는 더 꺾일 수밖에 없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최근 입법 독주를 민심이 가뜩이나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 터다.

윤 총장 복귀로 청와대가 숙원으로 추진한 ‘검찰개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개혁은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핑계일 뿐, 정권 말을 듣지 않는 검찰 손보기가 목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릴 것이다. 민주당은 윤 총장 없는 운동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검찰수사권ㆍ기소권 완전 분리를 완성하는 그림을 그렸으나, 순수성을 의심받을 처지에 놓였다.

'윤석열 정국'을 마무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회복에 전념하려던 구상도 꼬이게 됐다. 이르면 다음주 검찰에 복귀하는 윤 총장은 정권이 아파하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옵티머스ㆍ라임 사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사건 등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울ㆍ부산시장 선거와 2022년 대선을 ‘검찰과의 대립’ 속에서 치러야 하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더 이상 남은 카드가 없다”는 장탄식이 나온다. 민주당의 검찰총장 탄핵안 제출이 최후의 카드로 남아 있다. 다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밤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법원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다른 방법으로 징계를 강행하기는 힘들다”며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 장관은 내년 초 예정된 검찰 정기 인사에서 윤 총장을 또 한 번 흔들려 하겠지만, 검찰이 똘똘 뭉친 이상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추 장관은 끝내 쓸쓸히 퇴장할 가능성이 크다.


정지용 기자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