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도 빛나는 패션 스타일을 숨기지 못한 여성들이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3일(현지시간) 올해를 빛낸 '베스트 드레서' 25명을 선정해 보도했다.
그런데 이번에 뽑힌 여성들 중엔 2030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40대 이상이 코로나19 속 패션계를 주름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50)를 비롯해 디자이너 토리 버치(54), 가브리엘라 허스트(44) 등 젊은 패션계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50대 이상 유명 인사들을 꼽아봤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맏딸인 캐롤라인 공주는 어머니 만큼이나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평상시에도 20대나 소화할 법한 과감한 스타일을 뽐내는가 하면 작은 액세서리를 활용해 존재감을 드러낼 줄 아는 '실력파'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올해 캐롤라인 공주의 패션이 가장 돋보였던 순간은 지난달 19일 모나코의 국경일 행사. 그는 이날 금빛 단추가 돋보이는 샤넬의 블랙 스커트 정장을 선택했을 뿐이다. 다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아이보리색 장갑과 블랙 헤어밴드.
텔레그래프는 특히 헤어밴드에 높은 점수를 줬다. "공주는 머리카락을 블랙 헤어밴드로 쓸어 올리며 부드러운 회색 뿌리를 은은하게 돋보이게 했다"고 치켜세웠다.
미국의 첫 여성이자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으로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는 올 한해 뛰어난 언변뿐만 아니라 탁월한 패션 감각으로도 주목 받았다.
그의 패션은 선거운동 당시 빛났다. 그 동안 여성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스커트와 하이힐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평범한 청바지를 입고 컨버스 운동화 차림으로 대중에 다가갔다. 미 언론은 여성성을 부각하는 대신 컨버스와 청바지를 입고 유세 현장을 누빈 해리스 당선인의 모습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해리스 당선인이 가장 돋보였던 순간은 지난달 7일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대선 승리 축하행사 때다. 그는 이 역사적 순간을 위해 흰색 수트를 몸에 걸쳐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여성 정치인에게 흰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흰 옷을 입었던 전통을 감안하면 해리스 당선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얀 푸시 보우 블라우스도 남성들의 상징인 넥타이를 대신했던 옛 여성 정치인 선배들의 뜻을 따랐다.
그의 등장은 백악관 집무실의 인테리어마저 궁금하게 만든다. 텔레그래프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집무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어떻게 바꿀지도 관심사"라고 한술 더 떴다.
집에 두고 온 "케빈!"을 외치던 엄마, 캐서린 오하라는 최근에 다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영화 '나홀로 집에' 이후 드라마 '쉬트 크릭(Shitt's Creek)'을 통해서다. 백만장자 로스 가족이 졸지에 폭삭 망해 시골 마을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다.
오하라는 극중 모이라 로스를 연기하며 치명적 매력을 뽐내고 있다. 그는 화려한 의상은 물론이고 형형색색의 가발과 '투 머치' 액세서리 등으로 허영심 많은 사모님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발렌시아가, 이자벨 마랑, 알렉산더 맥퀸 등 모이라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하라의 실제 생활도 드라마 속 모이라 만큼이나 화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래프은 2월 베너티페어 오스카 파티에서 입은 자수 장식이 인상적인 롱드레스에 주목했다. 60대에도 군살없는 바디 라인을 자랑했기에 소화할 수 있었던 의상이다.
참고로 이 드레스는 디자이너 제프리 도드가 2018 F/W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코로나19 속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만큼 자신의 이미지가 얼마나 막강한 힘이 있는지 보여준 사람도 없을 듯하다. 여왕은 올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때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색상,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밝은 색상의 의상들을 골라 입었다.
5월 2차 세계대전 종전 75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할 때도 연파란색 계열의 따뜻한 색상의 옷을 택했다. 심지어 고령이라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감안 수개월 동안 공개 활동을 중단한 뒤 10월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보였을 때도 로즈 핑크 색상의 코트가 인상적이었다.
여왕의 패션은 색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여왕은 지나치지 않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색상을 선호하는 것 같다. 1952년 즉위 후 68년만의 최장 공백기를 가졌던 여왕이 다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을 때 의상과 색감에 얼마나 고심했을까. 결국 여왕이 즐겨입는 핑크색이 낙점된 게 아닐까.
3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코먼웰스(영국연방) 예배 이후 7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텔레그래프는 로즈 핑크를 선택한 여왕의 안목에 찬사를 보냈다.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패션 역주행'을 선도한 이가 바로 낸시 펠로시 의원이다. 지난해 자신의 빨간색 막스마라 코트를 유행시키면서 이 브랜드가 다시 이 코트를 만들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기도 했다. 패션계에 파장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그는 자신의 패션 감각을 의상뿐만 아니라 마스크에 적용했다. 의회가 열릴 때마다 밝은 색상의 정장과 드레스를 입었고, 이 의상들의 색상이나 무늬를 살린 마스크를 선택했다. "마스크를 액세서리 화 한 최초의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펠로시 의원은 메시지는 강렬했다. 굳이 말로써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전하지 않아도 됐다. 단지 액세서리처럼 활용한 마스크 착용 모습만 보여준 것. 매번 의상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의 마스크 착용은 그저 패션이었다. 생활의 일부처럼 말이다.
그래서 언론은 펠로시 의원을 '인플루언서'로 꼽기도 한다. 패셔니스타들처럼 뭐만 걸쳤다 하면 '완판'되기 때문이다. 마스크도 마찬가지. 오죽하면 텔레그래프조차 "그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정당화하고 신비화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