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반도 주변 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그러면서 “제3자를 겨냥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소리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서 중러 간 결속을 다지고, 한국의 조바심을 노려 윽박지르는 모양새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매체들은 23일 “전날 동해와 동중국해 상공에서 중국 훙(H)-6 전략폭격기 4대,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 등을 투입해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양국 군용기 19대가 동해 KADIZ에 진입했다”고 밝혔지만, 중러 국방부는 “이번 훈련은 양국 협력과 전 세계 전략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고 응수했다.
중러 외교장관은 좀더 노골적으로 미국을 겨냥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통화에서 “미국이 시대를 역행해 일방적으로 제재의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공평과 정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알렉세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의 다자주의 파괴 행위를 강력 반대한다”며 “미국의 압박을 저지하고 중러 양국의 공동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중국ㆍ러시아의 KADIZ 진입 횟수는 2018년 230회, 지난해 180회(합참 자료ㆍ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달한다. 이틀에 한번 꼴이다. 중국이 주도하고 러시아가 가세해 화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중국이 2013년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뒤 횟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전략폭격기 H-6의 최신형인 H-6K를 기존 2대에서 올해 4대로 늘렸다. 장거리 전략 훈련을 늘려 군사작전 운용범위를 넓히고 미국에 대응한 제공권 확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공군전문가 푸첸샤오(傅前哨)는 “전 세계에서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운용하는 국가는 중국, 러시아, 미국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뭉치면 미국을 상대로 해볼만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은 폭격기를 앞세워 러시아와 대규모 KADIZ 진입 훈련을 정례화할 심산이다. 지난해 7월 첫 공중 전략 훈련 때는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해 한국 전투기가 경고사격에 나서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올해 두 번째 훈련은 달랐다. 한국에 미리 KADIZ 진입을 알리며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다음 훈련을 위한 장기포석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로벌타임스는 “지난해보다 훈련 수준이 진일보했다”면서 “전 세계가 중러 전략폭격기의 연합 훈련에 더 익숙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도 전투기를 띄우며 긴급 대응했다. 중러 군용기가 훈련 과정에서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을 일부 통과한 탓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맹과의 공조를 부쩍 강조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은 “중국과 러시아의 이번 훈련은 군사 공조를 부각시키면서 한미일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연히 일본도 맞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외국 항공기에 대응해 긴급 발진한 횟수는 지난해 947회로, 하루 평균 2~3회에 달한다. 이중 중국이 촉발한 대응 출격은 675회로 71.3%를 차지했고 러시아가 268회(28.3%)로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