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신작이 많지 않다. 지인과 식사나 술자리를 갖기도 수월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시대, 크리스마스 연휴를 집에서 고요하게 보내야 한다. '집콕'이 불가피하다면 즐기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다행히도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라는 넓고 넓은 영상의 바다가 있다. 결정장애가 있는 영화ㆍ드라마 애호가들의 빠른 선택을 돕기 위해 5편을 추천한다. 단,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무관하다.
완성도 높고 재미있으며 유익하기까지 한 드라마 시리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중심으로 왕실과 영국 현대사를 돌아본다. 대영제국의 영화는 퇴색하고, 왕실의 권위는 추락하는 상황에서 왕가의 전통을 지키려는 여왕의 분투와 고뇌가 담겼다.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은 어린 시절 크게 바뀐다. 아버지 조지 6세가 형을 대신해 갑작스레 왕위에 오르면서 뜻하지 않게 후계자가 된다. 여왕이 된 후 여러 풍파를 거친다. 안으로는 여동생 마거릿 공주의 자유분방한 사랑이 불러온 파장, 가부장적인 남편 필립 공과의 갈등 등을 겪고, 밖으로는 런던 스모그 사건과 영연방 분열 등 영국이 처한 위기와 대면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2세가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돌파하며 진정한 여왕이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영국 왕실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존 인물들의 스캔들과 정치적 발언 등 민감한 내용이 꼼꼼히 묘사된다. 원작자인 피터 모건의 취재력과 필력이 놀랍다. 윈스턴 처칠부터 마거릿 대처까지 영국 총리들의 됨됨이, 여왕과의 관계를 일별할 수 있기도 하다.
지난달 공개된 시즌4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의 사랑과 파경을 담았다. 여왕과 대처 총리의 대립도 다뤘다. 시즌4는 ‘퀸스 갬빗’과 함께 하반기 넷플릭스의 대표 콘텐츠로 꼽힌다. 시즌1,2에선 클레어 포이가, 시즌3,4에선 올리비아 콜먼이 여왕을 연기한다.
국내 극장 상영을 하지 않은 대만 영화다. 평범한 가족이 겪는 평범치 않은 삶을 그렸다. 아버지는 운전학원 강사, 어머니는 미용사인 집안에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모범생이다. 공부를 잘하고 조신하며 배려심이 넘친다. 문제라면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고, 보이지 않게 심적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사고뭉치로 부모의 속만 썩인다. 불량한 친구랑 결국 사고를 쳐 소년원에 간다. 게다가 임신한 여자친구까지 부모 앞에 나타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아예 없는 셈친다.
특별한 사건사고가 없을 듯한 이야기지만 의의로 반전이 잠복해 있다. 중반부에 한번 놀라게 되고, 후반부에 눈을 크게 뜨게 된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 자식들의 반항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특별한 사연에 담아 능숙하게 처리하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상영시간 155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초반부 부실한 자막은 흠. 지난해 대만 금마장 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상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미래의 결과에 개입해 이를 변경한다면 당신이 본 미래는 진짜 미래일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의문이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드라마 ‘데브스’는 제법 철학적이고 지극히 과학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다.
릴리(소노야 미즈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살며 남자친구와 함께 세계 최고 IT기업을 다닌다. 회사의 설립자는 양자역학 컴퓨터를 개발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데 가장 우수한 직원은 데브스라는 연구개발 센터에서 일한다. 릴리의 남자친구는 설립자의 간택을 받지만 어느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미심쩍은 릴리는 남자친구의 죽음을 파고들고, 회사가 감춰온 비밀 프로젝트를 알게 된다.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경고장 같은 드라마다. 서술이 느리다. 빠른 박진감 대신 숨을 서서히 조여 오는 듯한 서스펜스를 전한다. 감독은 알렉스 가랜드. 영화 ‘엑스 마키나’(2015)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에서 기괴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구현했던 감독이다. 드라마는 편의와 속도와 돈이 우선인 IT시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때는 19세기 말. 장소는 미국 뉴욕. 연쇄살인이 발생하나 경찰은 무능하다. 뉴욕경찰서 최초 여직원인 사라(다코타 패닝)와 뉴욕타임스 기자 존(루크 에번스), 범죄심리학자 라슬로(다니엘 브륄)은 우연히 만나 범죄해결을 위해 의기투합한다.
사라 일행은 추리와 취재력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연쇄살인범을 쫓는다. 연쇄살인범의 신출귀몰한 수법에 수사가 난항을 겪는데, 사회의 편견 역시 수사를 방해한다. 남성 정치인과 경찰 간부 등에게 사라의 활약은 활개로 비치고, 라슬로의 과학적 접근은 미신 취급을 받는다.
세 사람이 온갖 난관을 뚫고 우정을 촉매제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묘미다. 올해 공개된 시즌2편에선 사라가 경찰서를 나와 탐정사무소를 차려 활약한다. 사라와 존이 사랑과 우정의 경계선을 오가는 로맨스 요소가 더해졌다. 세기말의 염세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시기를 세밀히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19세기 말 뉴욕의 풍광 등도 볼거리다. 범죄를 잉태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현대적 관점에서 짚은 점도 흥미롭다.
지난 11일 극장 개봉한 최신 뮤지컬영화다. 퇴물 취급 받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들이 여자친구와 고교 졸업파티(프롬)에 가고 싶은 시골 소녀를 돕는 이야기를 그렸다. 화려한 의상과 경쾌한 군무, 흥겨운 노래를 즐길 수 있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메릴 스트리프와 니콜 키드먼, 제임스 코든이 시골 소녀를 도우려는 뮤지컬 배우들을 연기했다. 뮤지컬 배우들은 당초 퇴락한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해 사회적 파장이 큰 소동에 끼어든다. 지역 주민들과 갈등하고 소녀와 우정을 쌓으면서 진심을 갖기까지의 과정이 노래와 춤으로 그려진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메시지는 명료하다. 영화의 즐길 거리는 결국 배우들의 춤과 노래, 연기다. 되도록 큰 화면에 청명한 음향기기로 봐야 한다.
넷플릭스가 내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을 겨냥해 만들었다. 할리우드 유명 프로듀서 라이언 머피의 첫 연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