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불임부부 5000만쌍... '대리모' 영화, 법 틈새 파고 들다

입력
2021.01.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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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카이거 감독, '대리모' 미화 영화 선보여
최고인민법원 "법에 도전 말라" 강력 경고
치솟는 불임률, 中 대리모 통해 年 1만 출산 
원정출산 기승..."비영리 허용해야" 목소리

영화 ‘패왕별희’ 감독 천카이거(陳凱歌)가 중국 사회의 뇌관을 다시 끄집어냈다. 지난달 대리모를 다룬 단편영화를 선보였는데 문제는 결말이 해피엔딩이었다. 대리모를 금지한 중국 법체계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이를 놓고 “불법행위를 미화한다”는 비판과 “대중의 인식수준을 높였다”는 찬사가 엇갈리고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거액의 돈을 받고 대리모로 임신한다. 약혼자는 자신의 2세인 줄 알았다가 배신감을 느끼지만, 태아와 교감을 나누며 출산을 돕고 의뢰인에게 아기를 무사히 건네는 우여곡절 끝에 둘의 사랑은 깊어진다. 대리모의 폐해를 간과한 채 감정 연기와 스토리 전개에 치중하다 보니 등장인물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중국 웨이보 조회수는 2주 만에 5억회를 훌쩍 넘겼다.

보다 못한 사법부가 나섰다. 최고인민법원은 기관지를 통해 “중국은 대리모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법에 도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2001년부터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대리임신 시술을 금지해 위반할 경우 최고 3만위안(약 540만원)의 벌금과 사안에 따라 형사 고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늘면서 대리모를 마냥 억제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중국의 불임률은 1990년 2.5%에서 2010년 10%, 2018년 15%로 늘었고 2023년에는 18%로 치솟을 전망이다. 불임부부는 2017년 4,770만쌍에서 2023년 5,620만쌍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관 시술은 성공률이 50%에 불과해 찬밥 신세다.

중국에서는 매년 1만명 가량의 신생아가 대리모를 통해 태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요가 상당한 만큼 해외에서 활로를 찾기도 한다. 부모 한쪽이 중국인이면 외국에서 출생한 아기라도 중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대리모가 합법인 국가의 예를 들어 △서비스와 기술이 가장 좋은 미국은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 이상 △미국과 의료환경이 비슷한 러시아는 반값인 50만위안(약 8,500만원) △이보다 열악하지만 가성비 좋은 우크라이나는 40만위안(약 6,800만원)이라고 선전하며 원정 출산 가격도 매겼다.

이처럼 암암리에 고비용의 대리모가 성행하다 보니 금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 기증 절차를 준용해 영리 행위만 금지하고 가족이나 친척간 혹은 선의로 택하는 대리모 출산은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중국은 앞서 2016년 두 자녀를 허용하면서 관련 규정을 개정해 ‘어떤 형태의 대리임신도 금지한다’는 조항을 슬그머니 뺐다. 의료인의 시술을 금지하고 처벌할 뿐, 대리임신 기술 자체는 차단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불임부부의 숨통을 틔울 ‘사각 지대’를 남겨놓은 셈이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