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꼬박 7시간 '까대기'... "택배사 인력 지원 표도 안 나"

입력
2021.01.07 04:30
8면
<택배기사 까대기·배송 동행 취재>
하루 6~8시간 배송물 분류 공짜노동
시간당 50개 쳐도 밤 9시 겨우 끝나  
택배사, 분류인력 충원 턱없이 부족
까대기 늦어지면 노동시간 증가로
몽롱해질 때 많아 "이래서 죽는구나"

편집자주

택배기사와 경비원, 청소노동자가 스러질 때마다 정부·국회·기업들은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고달픈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취재했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언급되는 말이 '까대기'다. 까대기는 11톤 화물차에 산더미처럼 쌓인 수화물을 땅으로 내리거나(하차), 바닥에 있는 물건을 올려 화물차를 가득 채우는 일(상차)을 의미하는 업계 속어다. '창고,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 '가대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요즘엔 하차한 수화물을 택배기사들이 배송구역별로 분류해 1톤 화물차에 싣는 작업까지 포함해 까대기라 일컫는다. 지난해 노동시민단체 '일과건강'이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업무 중에서 까대기에 해당하는 분류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2.8%에 달했다. 업무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과로를 유발하는 탓에 때로는 기사들을 사지로 내몰기도 하지만 보상은 전혀 없다. 한국일보는 택배기사를 옥죄는 까대기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박상오(45), 한진택배 기사 조영준(37)씨의 하루를 각각 동행취재 했다. 이름은 기사들 요청에 따라 모두 가명을 썼다.

상자는 레일을 따라 흐르고

드르르르르~~ 위위위잉~~.

지난해 12월 28일 경기 동부지역 한진택배 터미널. 오전 7시가 되자 굉음과 함께 육중한 철제 레일이 일제히 돌기 시작했다. 레일 위로 각양각색의 상자가 쏟아지자 한진택배 기사 조영준씨가 기자에게 주문했다.

"○○읍 ○○리 ○○아파트랑 ◇◇아파트 상자만 골라내면 돼요. 그게 제 구역이에요."

기자는 일일 아르바이트생으로 조씨의 까대기 작업을 돕기로 약속된 상태였다. 조씨 주문은 간단했지만 실행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송장에 적힌 글씨는 깨알처럼 작은 반면, 레일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멍하니 몇 개 상자를 흘려보내고 있는데, 조씨의 손은 이미 잽싸게 상자들을 낚아채고 있었다.

까대기는 같은 구역을 배송하는 택배기사간 협업이 중요하다. 조씨가 속한 구역의 택배기사는 모두 8명. 4명은 레일 앞에 붙어서 택배를 골라내고 나머지 절반은 배달 순서대로 상자를 화물차에 넣었다. 15~20분마다 역할을 맞바꿨고 교대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8명의 손발은 착착 맞았다.

레일만 뚫어져라 쳐다보니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택배상자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줄 미처 몰랐다. 눈에 익숙한 갈색 표준상자부터 생수, 골프채, 이불, 감자, 고구마, 김치, TV, 타이어, 전자레인지까지 온갖 물품이 레일 위를 도도히 흘렀다. 까대기 시작 후 2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허둥대는 기자에게 택배기사 김정완(47)씨는 "이 작업에 익숙해지는데 보통 한 달은 걸린다"고 했다.

대형 화물차에서 짐을 내리는 하차 작업이 잠시 지연되자 레일 위를 지나는 상자도 뜸해졌다. 모처럼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니 정작 택배기사들 표정은 어둡다. 하차가 미뤄지면 분류시간이 길어지고 배송 출발도 덩달아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택배기사의 전체 노동시간 증가로 이어진다. 하차는 택배회사 하청업체가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 맡기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으로'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택배업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가능한 31개 서비스업종에 아직 포함돼 있지 않다. 이 터미널 역시 하차 인원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였다. 택배기사 박하용(54)씨는 "이 터미널의 하루 물량이 2만~2만5,000개 정도라서 하차 인원은 14~16명이 필요한데, 하청업체가 임금을 아끼려고 10명만 쓴다"고 꼬집었다. 최근 늘어난 물량으로 하차가 계속 늦어지자 택배기사들은 '보이콧'까지 불사하며 반발했고 그제서야 이날 2명이 추가 투입됐다고 한다.



이날 하차 작업은 오전 11시30분쯤 마무리됐다. 박씨는 "(하차 인원) 두 명을 새로 넣어 그나마 좀 빨리 끝난 것"이라며 "어제까지만 해도 늘 정오를 넘겼다"고 했다. 하차가 끝났다고 까대기가 끝난 건 아니다. 터미널 곳곳에서 분류를 하느라 화물차에 미처 싣지 못한 상자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이 상자들을 자신의 배송구역 동선을 감안해, 나중에 가는 곳은 화물차 안쪽에, 먼저 가는 곳은 바깥쪽에 싣는 게 노하우다. 초보 기사들은 동선을 잘못 짜서 낭패를 보곤 한다. 학원강사를 하다가 올초 택배업에 뛰어든 김정완씨는 "처음 시작할 땐 매일 오전 3시 넘어 배송을 끝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날 조영준씨에게 배정된 택배는 344개. 화물차에 한 번에 실을 수 없어 50여개는 터미널 롤테이너(RT)에 쌓아놓았다. 이런 날은 배송을 나갔다가 중간에 들어와, 나머지 택배를 싣고 다시 배송하는 '2회전'을 해야 한다. 얼마 전 무릎을 다쳐 몸이 좋지 않은 조씨의 마음은 그래서 더 다급하다. 그는 "택배기사들은 한 번 간 곳을 또 방문하는 2회전을 가장 싫어한다"며 "오늘 같은 날은 1분이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고 화물차에 다급히 올라탔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까대기

지난해 10월 택배업체들은 일제히 분류지원인력 충원을 약속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이 기존 1,000명에 3,000명을 더해 4,000명의 인력을 순차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한진택배와 롯데글로벌로지스도 각각 1,000명을 투입하겠다며 동참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인력투입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국일보가 취재과정에서 방문한 터미널 4곳 모두 분류지원인력이 투입되지 않고 있었다.

최근엔 분류지원인력 충원의 실효성을 두고 반신반의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택배기사들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분류된 상자를 화물차에 싣는 작업만 하도록 하려면, 사실상 기사와 같은 숫자만큼의 분류지원인력이 필요하다. 한진과 롯데의 택배기사는 각각 8,000여명이다. 당초 공언대로 1,000명씩 투입돼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택배회사들이 쏟아낸 대책이 여론 잠재우기용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히는 게 '휠소터'다. 휠소터는 송장 바코드를 빠르게 인식한 후 컨베이어 벨트 곳곳에 설치된 소형 바퀴(휠)를 통해 택배를 배송지역별로 자동 분류하는 장비다. 택배기사들은 휠 앞으로 온 상자를 받아 화물차에 싣기만 하면 된다. 2016년부터 1,400억원을 투자해 전국 200여개 자사 터미널에 휠소터를 설치한 CJ대한통운은 이를 통해 택배기사들의 분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휠소터도 '만능'은 아니다. 휠소터는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한다. 기존 터미널 부지에 덩치가 큰 휠소터를 설치하면, 나머지 공간이 줄어들어 택배차량의 접안율(레일 가까이 화물차를 주차할 수 있는 비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해 12월 15일 직접 방문한 경기 구리시 CJ대한통운 중랑터미널의 택배기사들은 "휠소터가 무용지물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오씨는 "휠이 8~10개는 돼야 쓸모있는데 여기는 면적이 좁아 4개뿐"이라며 "휠 하나에 20명씩 4개 벨트에 80명이 몇 시간씩 붙어있어야 해서 옛날 수동분류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전했다. 터미널 접안율도 50%에 못 미쳐 기사 수십 명이 분류한 짐을 손수레에 담아 자신의 트럭까지 수 차례 실어 나르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휠소터를 통해 2~3시간이면 분류작업이 끝난다는 CJ대한통운 말과 달리, 박씨의 까대기는 이날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2시가 넘어 끝났다. 박씨는 "6~8시간 까대기를 하고 나면 배송도 하기 전에 녹초가 된다"고 토로했다. CJ대한통운은 이에 대해 "중랑터미널은 부지가 협소해 올 초 이전 예정인 곳"이라며 "다른 터미널에선 휠소터의 장점이 잘 발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380개의 택배를 맡은 박씨는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 중랑구 빌라에서 첫 배송을 시작했다. 그의 배송구역은 아파트는 없고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골목이다. 15년차 베테랑인 그는 구역 내 거의 모든 빌라 현관의 비밀번호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문 앞에 물건을 밀어 넣고 문이 닫히기 전 다시 나오는 모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택배 상자 7,8개를 안고도 5층 계단을 순식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좁은 골목에서 화물차를 몰며 적당한 주차구역을 찾는 솜씨도 남달랐다.

그는 "1시간에 50개를 쳐야(배송한다는 뜻의 은어) 한다"며 경보하듯 내달렸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쌓여있던 그의 화물차 짐칸이 텅 빈 시간은 오후 9시였다. 박씨는 오후 4시쯤 화장실에 한 번 간 것 빼고는 배송 내내 1분도 쉬지 않았다. 그의 차량은 이날 총 60번 정차했고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걸음 수는 2만보가 넘었다. 까대기를 오전 7시에 시작했으니 박씨는 이날 꼬박 14시간을 일한 셈이다.

그는 "까대기가 오후 3~4시에 끝나면 꼼짝없이 자정을 넘겨 배송하게 된다"며 "반대로 까대기를 오전 10시 정도에 마칠 수 있다면 오후 7시 퇴근도 가능하다"고 했다. 박씨는 "그렇게만 된다면 평일에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을 텐데"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까대기 공짜노동 구조 개선해야

일각에선 택배기사들을 향해 "일한 만큼 많이 버니 그 일을 계속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기사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들은 기본급 없이 택배 한 건당 700~8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여기서 7~10%의 대리점 수수료, 세금, 보험료, 기름값 등 차량 유지비를 빼야 한다. 한 달에 7,500개 안팎을 배송하는 박씨의 경우 월 순수입은 4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개인사업자니까 힘들 때 일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택배기사들은 자기 구역에 할당된 택배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200개였던 할당량이 300개로 늘었다. 힘들다고 나머지 100개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결원이 생기면 팀원들이 동료 물량까지 책임지거나 '용차(프리랜서 운송업자)'를 불러야 하는데, 이럴 경우 건당 수수료를 두 배 넘게 줘야 해서, 대다수 택배기사들은 쓰러질 정도가 아니면 아파도 그냥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동료들의 잇단 사고 소식을 접하는 택배기사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박상오씨는 "택배는 소자본(화물차 지입비용)에 몸만 건강하고 성실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도 이 일로 아내와 두 딸(고1, 초4) 생계를 책임졌으니 감사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전 돌아가신 분 중 동년배가 있었다. 배송하면서 어지럽거나 피곤해지면 그분이 생각나서 요즘엔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조영준씨 역시 "우리 터미널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아직 죽은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게 신기하다는 농담을 동료들과 자주 주고받는다"고 씁쓸해했다.

택배기사들은 곧 다가올 설 연휴(2월 11~14일)가 걱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과로 방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택배물량이 폭증하면 또 다른 참사가 터질 거란 우려였다. 박씨는 "물량은 월요일이 가장 적고 화요일이 가장 많다. 이후 토요일로 갈수록 조금씩 줄어드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1주일이 '월화화화화화'나 다름 없다. 설 연휴까지 겹치면 정말 큰 일"이라고 했다. 김정완씨도 "지난해 추석 때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자고 일할 때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라고 느꼈다"며 "벌써부터 설이 두렵다"고 걱정했다.

박상오씨는 기자와 헤어지기 전 "일터에서 죽기 싫다"며 까대기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까대기가 우리 업무인 줄 알고 일했는데, 실상은 기사들을 좀먹는 공짜노동이었다"며 "까대기를 택배기사에게만 떠맡기는 지금의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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