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저녁으로 예정됐던 송년회식을 22일 저녁으로 급변경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23일부터 수도권에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직장인 A씨와 동료들은 상사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각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모임을 취소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민들은 모임 시간을 앞당기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A씨는 “일부 동료가 반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상사의 제안이라 다들 참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해했다.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수도권 지자체가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이를 피하려는 꼼수가 벌써부터 판치고 있다. 방역효과 극대화와 혼란 차단을 위해 조속히 보다 정교한 지침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명령 발효 하루 전인 22일 현장에서는 ‘23일 0시부터 1월 3일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약을 받는 업장들이 수두룩했다. 기자가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를 통해 26~27일 서울 홍대 근처 숙소에 8명을 입력하자 아무런 확인이나 제약 없이 예약이 이뤄졌다. “집합금지로 인해 5명 이상 숙박이 안 된다”는 안내도, 주민등록표 상의 식구 등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숙박업체가 아닌 (호스트와 손님을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자라, 기술적으로 5인 이상 예약을 막는 건 어렵다”고 답했다.
초유의 행정명령을 뒷받침할 시스템의 부재에 이어 꼼수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일행 5명이 2명, 3명으로 나눠 호텔ㆍ모텔 등에 방을 2개 예약해 입실한 뒤 한데 모여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어도 제지할 방법은 현재 없다. 대한숙박업중앙회 관계자는 “한 객실에서 5명 이상이 행사나 파티를 못 하도록 업주가 손님에게 안내하고 있지만, 폐쇄회로(CC)TV를 지켜보지 않는 이상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업주들의 문의가 빗발쳐 서울시에 구체적인 지침을 문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음식점들도 마찬가지. 기자가 종로구의 한 중식당에 30일 저녁 6명 예약이 가능한지 문의하자 업주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를 언급하며 ‘3명씩 나눠 예약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시는 행정명령의 실효성을 위해 식당 등에 4인 이하 사전예약제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업주들 역시 “일행이나 단체가 4명 이하로 쪼개서 예약하면 걸러낼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중구의 한 중식당 직원은 “5인 이상 모임금지 조치 이전에도 단체 예약을 받지 않았지만 별도로 예약된 두 방의 사람들이 서로 방을 왔다 갔다 해서 관찰하니 일행이었다”며 “어떻게든 모임을 하려는 손님은 꼼수를 부릴 것 같다”고 말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정모(45)씨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다들 받지 않겠느냐”고 했다.
가족이라도 주민등록표상 주소를 달리하는 경우엔 모일 수 없지만, 자녀가 부모님댁을 방문하거나 지인을 불러 집에서 파티를 열어도 단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문제다.
이에 서울시도 이번 대책의 한계를 인정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현장단속을 하더라도 애매한 점이 많아 한계도 있을 것”이라며 “시민들께서 보다 적극 동참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각종 꼼수 모임 우려에 수도권 지자체는 구체적인 지침을 다듬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 자영업자, 시민들의 문의와 궁금증이 많아 인천시와 경기도와도 조율해, 가능한 경우를 상정해 일관된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며 “정부가 22일 발표한 5인 이상 식당 이용 금지 조치 등과의 정합성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