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원정대 '만옥'이 돌아왔다. 이번엔 넷이 아닌 혼자다. 가수 엄정화는 22일 신곡 '호피무늬'를 냈다. 2017년 12월 낸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신곡은 붉게 물든 노을 같다. 비트를 이끄는 기타 소리는 불타오르듯 강렬하고, 노랫말의 여운은 길다. "영원한 건 없다 해도 영원할 순간은 있어." 엄정화는 '호피무늬'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를 춤추며 노래한다. 반복되는 삶은 없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 '호피무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상을 놓치고 살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주어진 순간을 꽉 쥐어 자신을 잃지 말라는 응원처럼 들린다. 본지와 서면으로 만난 엄정화는 이 곡을 "희망을 주제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제 목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드렸고, 아픔을 공개하고 난 뒤 너무나 많은 응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죠. 환불원정대로 활동하며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고요. 제가 받은 만큼 (코로나19로) 다들 너무나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호피무늬'로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엄정화는 2010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목 수술을 한 뒤 후유증으로 왼쪽 성대가 한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양쪽 성대가 붙지 않아 '반쪽 소리'를 내야했다. 자신감은 뚝 떨어졌고, 가수로서 '천형(天刑)' 같은 굴레에 빠진 듯 했다.
그런 역경 속 음악에 대한 열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엄정화는 책을 읽으며 발성 훈련을 했고, 3년 전 어렵게 10집을 완성했다. 병원에 다니며 원하는 목소리가 안 나와 "울면서" 한 고난의 작업이었지만, 엄정화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이효리와 까마득한 후배 제시, 화사와 환불원정대로 나선 뒤 다시 홀로 마이크를 잡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오케이 마담'으로 또 한 번 대중성을 인정받으며 배우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그는 위험 부담이 큰 음악에 늘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이유가 뭘까. 엄정화는 "노래 하는 게 너무나 좋다"고 했다. "고민했던 것을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작업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호피무늬'는 힙합듀오 다이나믹 듀오 멤버인 개코가 프로듀싱했다. 래퍼 디피알 라이브, 리듬앤블루스(R&B) 가수 챈슬러를 비롯해 작곡가 패디 등 감각적인 음악으로 요즘 힙합신에서 주목받는 신예들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다. "우린 매일 벼랑 끝에 매달려서 사는 필링(feeling)" 같은 개코 특유의 감칠맛 나는 가사와 다이나믹하면서도 복고풍의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다. 환불원정대 막내인 화사도 피처링으로 참여해 '맏언니'의 귀환을 도왔다. '호피무늬'는 엄정화가 환불원정대로 활동할 때 솔로곡으로 준비했던 곡이라고 한다. 이번에 신곡으로 내는 데는 후배인 이효리의 응원 덕도 컸다.
"효리도 이 곡을 참 좋아했어요. '돈 터치 미'로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면서는 그러더라고요. '언니, 결과에 마음주지 말고 즐기면서 하세요'라고. 고맙더라고요."
엄정화는 '호피무늬' 뮤직비디오에서 새 빨간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 뒤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 노래를 시작한다.
1993년 노래 '눈동자'로 데뷔해 올해로 가수 활동 27년 차. '배반의 장미'를 비롯해 '포이즌' '초대' '몰라' '페스티벌' '디스코' '엔딩 크레딧' 등 여러 히트곡을 낸 그의 무대는 늘 파격이었다. 남성댄서들은 하이힐을 신고 나와 성별의 경계를 허물었다. 고정관념에 대한 정면 돌파였다.
엄정화는 "어떤 경계나 구속, 편견 없이 과감히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이젠 그것을 해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이, 처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음악도 무대 위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일어선 엄정화의 머릿속은 음악의 열망으로 가득했다.
"이번 신곡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움의 연속이었고, 제겐 영원할 순간일거예요. 정말 오래, 계속 노래를 하고 싶어요. 제 목 상태 때문에 안된다며 스스로 한계를 만들기도 했는데, 노력하면 그 장애를 넘어 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